통일부가 이번 주 국회에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에 따른 올해(2018년) 집행계획을 보고했습니다. 새해가 3개월 남은 상황에 올해 계획이 제출된 것으로 지각 치고도 큰 지각인 셈입니다. 담당인 남종우 인권과장은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올해 여러 가지 상황 변화로 늦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세계를 상대로 과감한 평화공세를 편 끝에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진 역사적 격변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인권 문제를 그만큼 후순위에 두기 때문이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 남 과장은 “국회 보고 첫 해인 지난해에도 여러 가지 상황 변화로 9월 말에야 국회에 보고됐다”며 “내년에는 봄에 정상적으로 집행 계획을 보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16년 9월 발효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통일부는 3년짜리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을 세우고 매년 당해연도의 집행계획을 국회에 보고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에 대한 ‘제1차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은 문재인 대통령 당선(5월 9일) 직전인 지난해 4월 26일 수립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되고 황교안 총리의 대통령직 권한대행 체제에서 마련된 계획은 세 가지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북한주민의 인간다운 삶을 실질적으로 증진시킨다. 둘째, 북한 당국의 정책 노선을 인권민생 친화적으로 전환한다. 셋째, 북한인권 증진 과정을 통해 남북 간 동질성 회복을 추진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권교체와 함께 지난해 집행계획의 국회 보고는 9월 말로 미뤄졌습니다. 지난해 1월 위촉된 임기 2년의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회의’의 자문을 거쳐 수립된 계획은 ‘북한 주민의 자유권과 사회권을 개선해 북한 인권을 실질적으로 증진한다’는 목표 아래 대북 인도적 지원과 유엔 차원 인권 결의 채택 등 7가지 역점 추진과제가 담겼다고 통일부는 밝혔습니다. 하지만 4월 발표된 기본계획의 7대 추진과제에 포함됐던 △북한주민의 인권의식 향상 △북한 인권문제의 책임 규명 △남북인권대화 및 기술 협력 등이 빠져 새 정부의 대북기조가 반영된 계획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실제로 북한 인권은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비핵화와 동시에 남북관계 개선을 이루겠다는 현 정부에는 민감한 이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선 상대방인 북한이 인권 문제 제기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기본계획이 마련됐을 때 북한 노동신문은 ‘대결 광신자들의 무모한 광대극’이라는 제목의 개인명의 논평(4월 30일)을 통해 맹비난 했습니다. 인권은 인류보편적인 권리로 국가를 초월해 보장되어야 한다는 상식과 달리 북한은 인권문제는 각국마다 특수한 상황이 고려되어야 하며 북한에는 인권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해왔습니다. 역대 한국의 보수정부가 정치적 자유권을 부각하며 북한 체제의 반인권성을 비난해 온 것과 달리 진보정부는 사회경제적 인권을 우선하며 대북지원을 통한 관계개선과 북한 경제의 회복이 우선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 결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서 모두 네 건의 남북정상선언과 합의가 나왔지만 그 어디에도 북한의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한다고 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해 중국에 대한 간여(engagement)정책을 펼친 역대 미국 정부가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인권 문제를 정치적 자유화와 경제적 개혁개방 요구의 지렛대로 사용한 것과는 다른 역사입니다. 올해 북한인권 증진을 위한 집행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말 소집된 자문위원회 회의에는 10명의 위원 중 현재 여당 추천 위원 5명은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고 통일부 관계자들이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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