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공동선언과 군사 분야 합의서를 비준하기로 하면서 남북관계 속도를 둘러싼 논란이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를 놓고 여야가 공방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등을 담고 있는 평양 남북 공동선언에 대해선 국회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기로 한 것.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또 무산된 가운데 남북 협력을 가속화하려는 한국과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미국 간의 이견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평양선언 비준으로 남북관계 더 가속화
정부는 23일 문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평양 남북 공동선언과 군사 분야 합의서를 심의 의결할 예정이다. 법제처가 이들 두 합의에 대해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없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평양공동선언은 판문점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후속 합의의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에서다. 법제처는 군사 분야 합의서 역시 판문점선언의 부속 합의 성격인 데다 비준 동의 요건인 ‘중대한 재정적 부담’이 발생하지 않아 비준 동의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청와대 관계자는 “평양공동선언에 담긴 합의는 합의 이행에 비용이 들지 않아 비준 대상이 아니다”라며 “미국도 남북 평양 정상회담 직후 환영 성명을 낸 내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평양공동선언의 ‘모체’ 격인 판문점선언에 대한 비준동의안이 아직 국회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해석대로라면 상위 합의문인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에서 후속 합의인 평양공동선언과 군사 분야 합의서를 먼저 비준하는 셈이다. 야당이 판문점선언 비용 추계를 문제 삼고 있는 만큼 ‘국회를 무시했다’는 비판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당초 정부 내에선 평양공동선언도 비준동의를 받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1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평양공동선언 비준 동의안에 대해 검토 중이다. 필요하다면 국회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국회 동의 절차 없이 정부가 평양 공동선언을 비준키로 한 것은 남북 경협의 동력을 이어가고 더 나아가 비핵화 협상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것이다.
북한 매체들은 판문점선언 비준동의가 장기화되자 최근 야당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의 대외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22일 “남조선 각 계층은 보수 야당의 수구냉전시대 선동을 즉각 중단하라고 강하게 비난하며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덜컹이는 북-미 대화에도 문 대통령 “걱정 말라”
하지만 일각에선 평양 공동선언과 군사 분야 합의서 비준을 계기로 남북관계 속도를 둘러싼 한미 간 온도차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내년 초로 늦출 가능성을 내비친 가운데 남북관계도 북한 비핵화와 속도를 맞추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의 비핵화 실무협상이 또 무산되면서 비핵화 협상이 다시 힘겨루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비건 특별대표는 16일 유럽 순방에 나서면서 북한과 실무협상을 제안했으나 최 부상 측으로부터 답을 받지 못하고 21일 귀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에 대해) 낙관적이다. 참모들이 걱정하면 오히려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한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큰 틀에서 맞는 길로 가고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때 많은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북-미가) 만날 때가 됐다.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제재 완화 요구를 둘러싼 한미 간 이견에 대해선 “가는 과정은 좀 다를지 몰라도 결국 같은 길로 가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미국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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