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남북 정상회담 한 달여만인 23일 국무회의를 주재해 평양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 비준안을 의결했다. 국무총리 서명과 대통령 비준, 공포 등의 행정적 절차가 이달 중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야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는 배경이 주목된다.
우선 정부는 법률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고 결론 내렸다. 4·27 판문점선언이 국회 비준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평양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의 경우 각각 체결된 합의서인 만큼 비준에 필요한 절차를 각각 진행할 수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또한 내용으로 볼 때 판문점선언과 별개로 추가적인 재정 부담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에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에 해당하지 않아 국회 동의가 없어도 된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평양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 비준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기대만큼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동력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이다. 북미 간 협상이 또다시 공전을 거듭하게 되더라도 남북 관계 발전의 토대를 다져놓음으로써 비핵화 협상의 선순환 구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국제사회 대북제재로 실질적 협력이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남북 간 신뢰 제고 측면에서도 ‘합의를 이행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남북 관계의 발전과 군사적 긴장 완화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더욱 쉽게 만들어 촉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판문점선언이 국회 비준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는 국내 정치적 상황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도 담겼다는 관측이다.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에서는 북한 비핵화에 실질적 진전이 없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등 남북 간 경협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다고 주장하며 비준에 반대하고 있다. 실제 지난달 11일 국회에 제출된 비준 동의안이 언제 처리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평양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 비준을 강행하기로 결정한 것은 합의 순서와 관계없이 가능한 것부터 비준함으로써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을 촉구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정부의 평양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 비준 결정에 환영 입장을 내는 동시에 야권의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안 처리 협조를 재차 촉구하며 정부에 힘을 보탰다.
일각에서는 지지율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조사해 지난 22일 공개한 10월 3주차 주간집계에 따르면 국정수행 지지율은 전주 대비 1.5%p 하락한 60.4%를 기록했다. 교황 방북 수락 등 ‘한반도 평화’ 이슈가 있었음에도 사립유치원 비리 파문과 서울교통공사 고용 세습 논란 등 민생 현안이 이어지면서 3주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정부가 평양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 비준을 강행함에 따라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에 대한 정치권의 공방은 더욱 치열해질 거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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