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엔 개인배상 포함 안돼”… 징용피해자 소송 이어질듯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1일 03시 00분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대법, 재상고 5년만에 확정판결

일본에서부터 약 21년, 한국에서만 13년여간 이어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대법원 선고 시작 후 단 9분 만에 끝났다.

30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들어섰다. 법대 정중앙에 앉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장 김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오후 2시 3분 김 대법원장은 신일본제철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의 쟁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9분 후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며 재판을 마쳤다.

2012년 5월 대법원의 손해배상 인정 원심 파기환송 판결 후 2013년 8월 9일 재상고심이 접수된 지 1908일 만이었다. 방청석의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가족, 내외신 기자 중 누군가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김 대법원장과 대법관 10명 “손해배상 인정”

이번 판결의 핵심 쟁점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2조를 어떻게 해석할지였다. 이 조항에는 일본이 한국에 5억 달러의 경제협력금을 제공하는 것으로 ‘양국의 모든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문구가 있다.

피고인 신일본제철은 이를 근거로 개인적 손해배상 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에 포함돼 함께 소멸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원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국가 권력이 관여한 반(反)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 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김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안철상 법원행정처장 제외)으로 구성된 전원합의체에서 11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 대법원장과 박상옥 조희대 김재형 박정화 민유숙 김선수 대법관 등 7명은 “원고들은 미지급 임금이 아닌 일본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했기 때문에 한일청구권협정 대상이 아니다”라는 다수 의견을 냈다. 협정문이나 부속서 어디에도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언급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경제협력금을 준 게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위한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한일청구권협정 당시 일본 정부가 12억2000만 달러를 요구한 한국 정부에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만 지급하고선 ‘경제협력금에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도 포함됐다’고 주장하는 건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기택 김소영 이동원 노정희 대법관은 다수 의견과 근거는 달랐지만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결론에는 동의했다.

반면 권순일 조재연 대법관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위자료 청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협정문의 ‘완전한, 최종적 해결’의 뜻은 외교적 보호권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더 이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 강제징용 피해자 14만8000여 명

대법원은 이날 선고에서 ‘한일청구권협정에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되어 있다’는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의 확정 판결이 국내에서 효력을 미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일제강점기의 불법행위에 대한 재판 관할권이 국내 법원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또 일제강점기의 구 일본제철이 운영하던 제철소에서 노역을 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채무를 신일본제철이 승계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이번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유사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국무총리실 소속 강제동원 피해 조사위원회가 파악한 강제징용 피해자는 14만8961명에 달한다. 생존자 5000여 명뿐 아니라 유족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이날 선고한 신일본제철 사건을 제외하고 대법원과 전국 법원에서 심리 중인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모두 14건이다.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 히타치조센 등 일본 기업 87곳이 피고다. 올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미쓰비시중공업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경우 이날 선고처럼 피해자들의 배상을 인정하는 결론이 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징용피해자 소송#한일협정엔 개인배상 포함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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