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관리들이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장마당에 나섰거나 구금시설에 갇힌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자행하고 있다는 국제인권단체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1년 이후 탈북한 주민 54명과 관료 출신 8명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한 성폭력 실태 보고서 ‘이유 없이 밤에 눈물이 나요: 북한의 성폭력 실상’을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에서 구금시설에 갇힌 적이 있는 8명의 탈북 여성은 보안성(경찰)이나 보위성(비밀경찰) 소속의 심문관과 시설 관리, 감시원으로부터 성폭력과 언어폭력, 모욕적인 처우를 경험했다고 증언했다.
또 북한에서 장사를 했던 탈북 여성 21명은 장사를 하기 위해 여러 지역을 이동하면서 보안원 등 관리로부터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양강도 장마당에서 옷을 팔다 2014년 탈북한 40대 여성 오정희씨(가명)는 단속원이 정기적으로 시장을 돌아다니며 뇌물을 요구했고 때로는 성행위를 강요했다고 증언했다.
오씨는 “장마당 단속원이나 보안원들은 자기들이 내키는 대로 장마당 밖에 어디 빈방이나 다른 곳으로 따라 오라고 한다”며 “우리는 남자들 손에 달렸다. 힘 있는 남자가 옆에 없으면 여자들은 살 수가 없다”마고 말했다.
첫 번째 탈북 시도가 실패해 2010년 함경북도 무산시 인근 보안성 관할 구류장에 구금됐던 40대 여성 박영희씨(가명)는 심문관이 옷 속에 손을 넣어 몸을 만지고 신체에 손가락을 삽입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내 목숨이 그 사람의 손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줬고 묻는 말에 다 대답해줬다”며 “북한에서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불법이 될 수 있는데 그 말인즉슨 모든 것이 나를 조사하는 사람의 생각이나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HRW는 “북한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국역 작업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많은 기혼 여성들이 장사를 시작했고 곧 가족의 생계부양자가 됐다”며 “하지만 성차별과 남성우월주의가 만연한 북한에서 장사하는 여성들은 성폭력의 위험에 크게 노출됐다”고 진단했다.
또 인터뷰 참가자들은 여성들이 감시원이나 보안원의 성관계 등 요구를 거절하거나 불만을 제기하면 수감 기간 연장, 구타, 강제노역에 처하거나 장사를 할 때 집중 감시대상이 돼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HRW는 북한 당국이 성폭력 사건을 조사하거나 기소하지 않으며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나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HRW는 북한 정부가 2017년 여성차별철폐협약 이행을 감시하는 유엔위원회에 2008년 9명, 2011년 7명, 2015년에 5명이 강간죄로 처벌받았다고 제출했다면서 “북한 당국자들은 그처럼 터무니없이 낮은 숫자가 북한이 폭력 없는 지상낙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듯 보이지만 이러한 숫자는 북한이 성폭력 대응에 완전히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라고 밝혔다.
케네스 로스 HRW 사무총장은 “북한에서 성폭력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대응하지 않으며 널리 용인되는 비밀”이라면서 “북한 여성들도 어떤 식으로든 사법적으로 대응할 방법이 있다면 ‘미투’라고 말하겠지만 김정은 독재정권 하에서는 그들의 목소리가 침묵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로스 사무총장은 “북한 여성들이 가족을 먹여 살릴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나설 때 정부 관리들에게 강간당할 위험을 무릅쓰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의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인정하고 여성들을 보호하며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구제책을 제공할 수 있도록 시급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