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문 닫히는 ‘서해5도’…평화 바다로 거듭날 준비 시동

  • 뉴시스
  • 입력 2018년 11월 1일 19시 51분


연평도 앞 바다는 고요했다. 연평도 포격사건 8주기가 3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잔잔한 파도는 들어오고 다시 나갔다.

남북 군사분야 합의가 이행된 첫날인 1일, 기자가 방문한 연평도 OP(관측소)에서 불과 1.5㎞밖에 떨어지지 않은 바다 위에 ‘보이지 않는’ 북방한계선(NLL)이 아른하게 펼쳐졌다.

해병대 관계자가 허공 위에 손으로 그어준 선(線) 조금 북쪽 위로는 중국 어선 10여 척이 평온하게 조업을 하고 있었다. 중국 어선이 서해 바다에 떠 있는 모습이 기자에게는 다소 생소했지만, 이곳 연평부대 해병대원들에게는 흔한 풍경인 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남북은 이날 0시부터 지난 9월 평양에서 서명한 9·19군사합의서에 따라 해상에서의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하고 포문을 닫기 시작했다. 연평부대 관계자는 이 일대에 있는 우리측 10여개의 포문을 모두 닫았다고 밝혔다.

물론 군 당국은 유사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형으로 덮개를 만들고 위장했지만, 북측을 향한 포문이 닫힌 의미가 결코 작지는 않다고 군 관계자는 전했다.

북측에서도 우리와 함께 포문을 닫았다. 연평도를 바라고 있는 북측 개머리지역과 갈도 등에서 포문이 닫혀있는 모습을 망원경을 통해 관측할 수 있었다.

OP 전방 좌측에 있는 북측 갈도의 경우 122㎜ 해안포가, 그 너머에 있는 개머리 지역의 경우 85㎜ 해안포가 늘 포구를 연평도를 향해 있었다. 한 해병대원은 북측의 포문이 열려 있을 때마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지켜봐야만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날 연평도 포격 사건의 시발점이 됐던 북측 개머리 지역에는 1개의 포구가 여전히 닫혀있지 않았다. 군 당국은 북측에 이같은 사실을 팩스로 통보하고, 북측도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회신했지만 정확한 의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군 관계자는 “정비 불량이라든지, 포문 고장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닫을 수 없는 상황이라든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새벽에 작업하는 인원이 식별됐다”고만 설명했지만, 적대행위를 중단한 첫 날에 열린 북측의 포문은 아직도 먼 남북 간의 거리를 보여주는 듯했다.

특히 개머리 지역은 2010년 11월23일 북측이 122㎜ 방사포를 전개해 기습적인 포격을 가한 곳이다. 당시 북측은 260여발의 포탄을 퍼부었고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숨졌다. 연평도에 있는 안보교육장에는 지금도 당시 무너지고 불에 탄 가옥이 보존돼 있고, 건물에 박혔던 122㎜ 방사포 포탄이 전시돼 있다.

이와 함께 100여명의 중대급 병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북측 장재도에도 포문이 열려 있었다. 해병대 관계자는 “(장재도는) 우리가 오래 전부터 관리해온 곳”이라며 “(북측이) 속이려고 만든 모의진지와 비슷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군 관계자는 “연평도뿐 아니라 백령도 등 우리가 확인 가능한 북측 동·서해 해안포 모두 포문 폐쇄 확인했다”며 “개머리지역 1개만 제외됐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함포에도 덮개를 볼 수 있었다. 북측의 함정은 보지 못했지만 이날 연평도 근해에서 기동하던 해군 고속정의 40㎜ 함포 포신에는 흰색 덮개가 씌워져 있었다.

해군 관계자는 “11월1일 이후에도 해상경계작전은 그대로 유지된다”며 “남북 합의에 따라 적대행위는 중지 됐으니, 해군은 군사분야 합의 철저히 이행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가 연평도 주민들에게는 아직 낯설은 모습이었다.

연평도 토박이인 박태원(58)씨는 “아직까진 사실상 피부로 와닿지 않다. 노무현 정부 때도 잘 진행되다가 갑자기 돌변했고 그후에 서해 5도는 많은 아픔들이 잔재해 있었다”며 “한단계 한단계 풀어서 2~3년 후까지 남북관계가 진전이 보인다면 그때나 조금 믿음이 갈까. 아직 신뢰성에 대한 회복이 저쪽(북쪽) 분들이랑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박한기 합참의장과 심승섭 해군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도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서해바다를 찾았다. 박 의장은 이날 오전 연평도 OP 앞에서 “남북 군사당국의 적대행위 중단조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첫발을 내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의장은 그러면서 “남북 군사 당국은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에 따라 오늘 0시부로 접경지역 일대 지상, 해상, 공중에서 적대행위를 전면 중단했다”며 “이제 우리 군이 한반도 평화의 앞자리에 서겠다”고 밝혔다.

심 총장은 서해 2함대 사령부를 방문해 “이번 남북 군사분야 합의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중대한 계기라는 점을 인식해, 우리는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군 본연의 임무인 군사대비태세에도 한치의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평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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