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직접 나선 데 이어 ‘병진노선’ 부활 시사
“美 화답 없이 1㎜도 안 움직여” 회담 안 쉬울 듯
제재 완화를 촉구하는 북한의 목소리가 거칠다. 미국은 비핵화까지 제재를 유지하겠단 입장이라 내주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이견을 좁히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북한은 2일 외무성 미국연구소장 권정근 명의로 발표한 글에서 “비핵화가 완결될 때까지 제재를 결코 완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뻗대는 미국의 고집불통에 우리의 중학생들마저 너무나 어이없어 ‘엿이나 먹어라’고 한다”며 강한 어조로 미국을 비난했다.
특히 권 소장은 “만약 미국이 우리의 거듭되는 요구를 제대로 가려듣지 못하고 그 어떤 태도 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 오만하게 행동한다면 지난 4월 우리 국가가 채택한 경제건설 총집중노선에 다른 한 가지가 더 추가돼 ‘병진’이라는 말이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핵’이란 단어는 없었지만 핵·경제 건설을 동시 추진하는 병진노선의 부활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다시 핵 개발에 나설 수도 있다는 으름장을 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지난 9월 리용호 외무상의 유엔 총회 연설을 계기로 종전선언보다는 제재완화를 끌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제재 완화를 촉구하는 거친 언사도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그 수위가 특히 높아졌다.
지난 1일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적대세력들이 우리 인민의 복리증진과 발전을 가로막고 우리를 변화시키고 굴복시켜보려고 악랄한 제재책동에만 어리석게 광분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대내외에 소개됐다.
내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고위급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제재 완화’를 반드시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겠다는 북한의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북한은 지난 4월 핵·경제 건설 병진노선의 승리를 선언한 뒤 경제건설 총력집중을 새 전략노선으로 택했다. 핵이 있던 자리를 ‘경제’로 채운 셈이어서 비핵화 국면에서 가시적인 경제 성과를 거두는 것이 절실하다.
김 위원장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장 등을 현지지도하며 경제 건설을 독려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제재 완화 없이는 해외 투자와 관광객 유치에 한계가 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2016~2020) 계획 목표 달성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북한은 제재 완화에 몸이 달아있는 반면 미국은 ‘선 비핵화 후 제재 완화’를 공고히하며 여유를 부리는 모양새다.
폼페이오 장관은 2일(현지시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6월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한 약속을 충분히 이행할 때까지 경제적 압박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트럼프 대통령은 누군가 다른 이들이 정한 인위적 시간표로 우리를 몰아넣지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며 “우린 계속해서 진전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급할 것 없다는 뉘앙스다.
일각에선 북한이 이 때문에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실무협상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대화하고 싶으면 제재 완화 협상안을 만들어 오라는 압박이란 것이다.
대북제재를 둘러싼 최근 기류를 북미 고위급회담을 앞둔 막판 신경전으로 볼 여지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양측의 의견차가 너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북한이 요구할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대북제재 완화”라면서 “미국 정부는 그동안 비핵화 조치 없이 대북제재 완화나 제재는 절대 없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해왔고 폼페이오 장관도 이번 협상에서 북한의 이 같은 요청을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제재에 대한 북미 간 의견차가 다른 의제를 협상하는 데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북미 고위급회담에선 풍계리 핵실험장에 대한 미국 사찰단 방문이 논의될 것으로 관측되는데 북한이 검증 수위와 일정 조율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 있다.
권 소장은 논평에서 “이제는 미국이 상응한 화답을 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산을 옮기면 옮겼지 우리의 움직임은 1㎜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북한도 당장 대화의 판을 깰 의향은 없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북한은 병진노선의 부활 가능성을 거론하긴 했지만 외무성 부상이나 대변인이 아닌 산하 연구소 소장 명의로 논평을 내 수위를 조절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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