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냉면 목구멍’, ‘배 나온 사람’ 등 남한 측 인사에 대해 무례한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그의 발언 배경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리선권은 2006년 남북 장성급회담부터 회담 대표를 맡아 대남 협상에 익숙한 인물로, 올해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북측 단장으로 나섰다. 군 출신인 리선권은 천안함 폭침 사건의 배후로 알려진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오른팔’이지만 출신 배경이 더 좋아 김영철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선권은 최근 남측 인사에 대한 거친 언사가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9월 평양 정상회담 후 오찬장에서 대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지난달 5일 10·4선언 기념 공동행사 후 평양 고려호텔 만찬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을 향해 “배 나온 사람한테 예산을 맡기면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 것. 또 지난달 5일 고위급회담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약 3분 지각을 하자 “자동차라는 게 자기 운전수를 닮는 것처럼, 시계도 관념이 없으면 주인을 닮아서 저렇게…”라고 면박을 주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5일 YTN뉴스에 출연해 “(리선권이)원래부터 입이 얌전한 사람은 아니었다”며 “우리 기준으로 보면 북한 분들이 얘기를 막하는 경우가 있는데, (리선권은) 그중에서도 더 막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때문에 사실 이것 자체를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솔직함의 표현이라고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다”면서도 “그런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또 이게 북한 고위층들한테 감지되는 남북한 관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차 연구위원은 “리선권이 아무리 직위가 올라갔다고 해도 김정은 위원장보다 위는 아니지 않은가? 전반적으로는 지금 분위기를 보고 눈치를 봐야 될 때”라며 “다시 말해서 남북한 관계가 굉장히 소중하고 ‘우리가 한국의 마음을 잡아야 되기 때문에 말 같은 것 되도록 조심해서 해야 된다’는 분위기냐, 아니면 전반적으로 ‘우리가 우위에 있고 말 좀 막 해도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해도 괜찮다’는 분위기 아니냐(인데) 이런 분위기에서 나올 수 있는 얘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기 때문에 사실 우려되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단어가 나왔느냐 안 나왔느냐, 얼마나 무례했느냐가 아니라 북한의 엘리트들이 생각하는 남북한 관계 분위기 자체가 현실을 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냐, 이런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방송에 함께 출연한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김정은 위원장도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멀다고 하면 안 되겠구먼’(이라고 했다.) 이게 반말이지 않나? 원래 북한 사람들이 반말 투, 육두문자, 아주 편한 자극적인 표현들을 많이 한다”면서 “사실 제가 보기에는 무슨 험악한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을 거다. 일종의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 부분을 우회적으로 표현했을 거다. 농담식으로”라고 추측했다.
이어 “그러나 엄연히 남북관계도 특수 관계이고 사실은 외교적인 의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향후에도 국제 규범이나 이런 것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저런 해프닝 같은 문제들이 비화될 개연성이 아주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건 북한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리선권의 발언이 농담이 아닌 한국 측을 압박하기 위한 계산된 발언이라는 분석도 있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동아일보에 “과거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말을 들어보면 북측에서는 치밀하게 역할 분담을 해서 협상을 이끌어간다. 이번에는 리선권이 ‘배드 캅’ 역할을 맡아 남측 주요 인사들을 윽박지르고 압박하는, 정교하게 계산된 발언들을 쏟아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는 5일 리선권의 ‘냉면 발언’에 대해 “현재는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는 입장을 내놨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말이라는 게 앞뒤의 맥락을 잘라버리면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해석돼 칭찬이 비난이 되기도 하고 비난이 칭찬으로 바뀔 수도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대변인은 “리 위원장의 발언이 남쪽의 예법이나 문화와 조금 다르다고 할지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갔을 때 받았던 엄청난 환대를 훼손하는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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