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문재인 정부 청와대를 거치며 비서관, 수석을 거쳐 마침내 정책실장 자리에 오른 김수현 대통령정책실장(56)은 11일 가진 기자간담회 내내 몸을 낮췄다. 김 실장은 나란히 임명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에게 경제 정책의 주도권을 주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투 톱으로 불린 ‘김동연-장하성’ 1기 경제 라인이 동시에 경질된 이유를 잘 알고 있고 이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 김수현 “경제부총리에게 확실히 힘”
김 실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2기 경제 라인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당부도 소개했다. 김 실장은 “대통령께서 ‘사회 정책과 경제 정책의 통합적 운영이라는 방향을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며 “그 뜻에는 경제 운영에 관해서는 경제부총리에게 확실히 힘을 실어 드리라는 것으로 저는 이해를 했다”고 말했다.
각각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을 맡아 불협화음을 냈던 ‘김동연-장하성’ 체제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김 실장은 “종전의 (경제 라인) 문제가 누가 이것을 주도하고, 누가 저것을 주도한다는 게 오히려 문제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큰 틀에서의 정책 기획은 정책실장이 맡고 그 집행은 전적으로 경제부총리가 맡는 것으로 역할 분담을 하겠다는 것이다.
김 실장이 “수석들의 역할을 좀 더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각 수석의 역할을 극대화하고, 그걸 통해서 내각과 (청와대의) 결합도를 한 차원 높이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며 “(정책실장은) 뒷받침하는 데 주력하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김 실장의 구상에 따라 경제 정책에 있어 윤종원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의 역할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거시경제 전문가인 윤 수석은 취임 직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를 지낸 대표적인 포용 성장론자. 청와대 관계자는 “매일 오전 정례 ‘티타임’ 회의에 참석해온 윤 수석은 문 대통령과 독대하는 일도 잦다”며 “부동산 업무까지 맡게 되면서 책임과 권한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포용 국가’ 등 정책 조율은 청와대가 계속 주도
그러면서도 김 실장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현 정부 3대 경제 정책에 대해 “큰 틀의 방향에 대해서는 전혀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는 “9·13대책 이후 시장이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고 본다”며 “그러나 조금이라도 불안한 열기가 발생한다면 선제적으로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사람은 바뀌어도 현 정부의 근간이 되는 정책 기조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신호를 김 실장이 직접 공직사회와 시장에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 정책의 집행은 홍 후보자에게 넘기더라도 정부 핵심 정책의 수립과 방향 설정은 김 실장이 맡겠다는 뜻이다. 김 실장 역시 “전체 국정과제 차원의 조율을 하는 역할을 맡겠다”고 공언했다.
다만 김 실장은 다른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김 수석은 “언제쯤 경제 지표가 나아지느냐”는 질문에 “여러 제반 대외 환경도 불확실성이 누적되고 있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지만 이를 ‘위기냐 아니냐’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튼튼하다 어떻다’ 하는 논쟁도 할 여유가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는 장 전 실장이 마지막 공개 발언이었던 4일 고위 당정청회의에서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근거 없는 위기론” “내년에는 성과가 날 것” 등의 발언으로 경제 현장과 야권의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했던 것과는 다른 태도다. 장 전 실장 등 1기 경제팀의 평가를 묻는 질문에도 김 실장은 “제가 감히 평가 말씀을 드리기는 적절치 않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정부의 큰 틀에서의 경제 정책 방향을 잘 잡아 주셨다”고 답했다. 장 전 실장의 마지막 조언에 대해서는 “어려울 때 열어 보라며 빨간 주머니와 파란 주머니를 주고 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실장이 기자간담회를 연 것은 지난해 8월 사회수석 신분으로 부동산 관련 대책을 설명한 이후 1년 3개월여 만이다. 청와대는 “김 수석이 소통을 강조하는 만큼 정례적인 기자간담회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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