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 리카델. 늘 쏟아지는 외신기사 중 유독 이 이름이 눈에 쏙 들어온 건 하루아침에 해고될 처지에 놓인 배경이 이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으로 활동해온 이 고위인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인 멜라니아 여사의 눈 밖에 나서 공개적으로 경질 요구를 받았습니다. 멜라니아 여사의 대변인은 13일 “리카델은 더 이상 백악관에서 일할 자격이 없다는 게 영부인실의 입장”이라며 그의 해고를 공식 요구했습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리카델은 지난달 멜라니아 여사의 아프리카 순방을 준비하면서 영부인실과 충돌했다고 합니다. 순방 일정이 확정되기도 전에 섣불리 발표했고, 이후 자신은 동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지원을 축소하거나 협조하지 않았다는 것. 순방이 끝난 후에는 멜라니아 여사의 최측근인 린지 레이놀드 비서실장 등 여사가 신뢰하는 참모들의 험담을 하고 돌아다녔다지요.
화가 잔뜩 난 멜라니아 여사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에게 불만을 제기하고, 켈리 실장이 이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전했는데 볼턴이 경질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영부인실이 대놓고 성명까지 낸 것을 놓고 언론은 “멜라니아 여사가 힘을 과시하려 한 사건”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평소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온 멜라니아 여사의 스타일로 봤을 때 확실히 다른 행보이기는 했습니다.
이 성명은 리카델이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 행사에 참석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발표됐습니다. 그가 실제로 잘렸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공식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해고는 기정사실이 되는 분위기입니다. 이렇게 되면 리카델이 올해 5월 NSC에 전격 합류한 지 6개월 여 만에 부보좌관직을 내려놓게 되는 겁니다.
NSC 부보좌관은 부장관급,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차관보다 높은 직급입니다. 볼턴 보좌관 바로 밑에서 한반도 정책과 북한 비핵화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외교안보 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인사이지요. 8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전격 취소하는 결정을 내린 백악관 회의 사진에 포착된 적도 있고요. 앞서 5월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정상회담 준비 실무팀으로 방한하기도 했습니다.
리카델은 볼턴 보좌관이 챙기는 참모로 알려져 있죠. 보수 강경파로, 충분히 보수적이거나 정권에 충성도가 높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쳐내는 데 앞장서 왔다고 합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밑에서 일하는 등 외교안보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고, 트럼프 행정부의 개국공신이기도 합니다.
그런 리카델은 제임스 국방장관과는 대놓고 충돌했다고 하는데, 매티스 장관이 참모로 검토하던 후보를 무려 10명 이상 끌어내리며 견제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매티스가 국방부를 민주당 성향 인사들로 채우려 한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매티스 장관에 대해 노골적으로 험담을 하고 다녔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이에 매티스도 그의 인사를 견제하는 것으로 앙갚음을 했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리카델은 올해 4월 볼턴 보좌관이 자신의 바로 밑 NSC 부보좌관으로 발탁하기 전까지는 상무부 수출 담당 업무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NSC 업무를 맡은 리카델이 이번에는 영부인에 의해 전격 해고되는 것을 일종의 ‘궁중 암투’로 봐야 할까요. 어쨌거나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당국자 중 한 명이 이런 식으로 또 교체되는 것은 우리로서는 다소 뜨악한 일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교착국면이 장기화되는데다 미국 중간선거가 끝난 이후 개각 폭풍이 몰려오는 시점이 아닙니까. 한반도 정책과 비핵화 협상에는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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