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중국은 평화롭게 부상할 수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6일 15시 19분


기로에 선 미중관계-3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이동선 고려대 교수는 냉전 종식 이후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지위가 점차 약해지는 미국이 ‘해외 지도력(offshore leadership)’을 구축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바다 건너 아시아 대륙에서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미국은 강한 군사력과 세계를 지도하려는 의지(will to lead)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군력과 공군력 등 군사력의 우위와 중국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 대만 등 강한 동맹체재를 바탕으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며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스승이면서 이른바 ‘공격적 현실주의자’로 분류되는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해외 균형(offshore balancing) 개념을 사용해 미중관계의 미래를 아주 비관적으로 전망합니다. 그가 쓴 최근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미중 패권경쟁의 시대(이춘근 번역, 김앤김북스, 2017)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경쟁은 지역 패권국가(regional hegemon)인 미국이 아시아 지역의 잠재적 패권국가인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패권국가를 세계 패권국(global hegemon)과 지역 패권국으로 구분합니다. 세계 패권국은 말 그대로 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국가입니다. 그런데 5대양을 가로질러 상대방 강대국의 영토에 자신의 군사력을 투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어느 강대국이 분명한 핵 우위를 확보하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도래하기 전에 세계 패권국이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도 세계패권국이 아니며 남북아메리카 지역 패권국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근대 역사상 강대국들이 지역 패권국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진정한 지역 패권국의 지위에 오른 것은 오로지 미국 밖에 없다고 미어샤이머 교수는 지적합니다. 지역 패권국이 된 미국은 다른 지역에 있는 강대국이 자신의 전철을 밟아 다른 지역의 패권국이 되는 일을 방해하고자 노력하는데 해당 지역에 잠재적 패권국의 출연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다른 강대국이 있다면 미국은 안전한 상태에서 개입하지 않고 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 미국은 군사적 개입을 하게 되는데 그런 경우가 역사상 네 번 있었다는 것입니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제국,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빌헬름 황제의 독일,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 독일, 냉전의 상대방인 소련을 상대로 한 전쟁이나 봉쇄정책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를 차용하면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다섯 번째 해외 균형 역할에 나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과 공세적 무역전쟁 등이 대표적인 정책입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책에서 미국이 중국을 억제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정책으로 과거 소련에 했던 것과 같은 봉쇄정책을 들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세 가지 대안의 하나로 ’중국의 경제발전을 둔화시키는 것‘ 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미어샤이며 교수는 이 정책이 실현가능하지 않다고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혹자는 중국 경제는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며, 그럼으로써 중국에 대한 미국의 상대적인 힘의 지위가 개선될 것이며 동시에 중국의 성장은 약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은 미국이 새로운 무역 상대방을 찾을 수 있는 반면 중국은 그렇지 못할 겨우에만 가능한 일이다. 두 가지 조건이 모두 필요하다.

불행한 일이지만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을 축소하고 투자를 줄이는 경우라도 세계 여러 나라들이 중국과의 경제거래를 확대하고자 하기 때문에 미국의 노력으로 인해 생성된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으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당하지 않는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자리를 이어받아 중국의 경제성장이 지속될 수 있도록 기름을 부어주는 역할을 담당하려 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중국은 경제적으로 고립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둔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존 J. 미어샤이머(이춘근 역),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미중 패권경쟁의 시대』, 513~514쪽.

미어샤이머 교수는 결론 부분에서 “중국의 부상이 조용하게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단언합니다. 경제력이 커진 중국은 과거 미국이 한 것처럼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판 먼로 독트린을 선언할 것이며, 미국은 중국 주변국들을 규합해 균형연합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과거 냉전시대 미소 양국관계보다 더 높다는 게 미어샤이머 교수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모든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이 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현실주의의 계보에 있지만 미어샤이머 교수가 ’방어적 현실주의‘로 분류한 고 케네스 월츠 버클리 & 콜럼비아대 교수는 미소 냉전과정에서 약소국가간의 국지전은 있었지만 양 강대국간의 전쟁은 없었다며 양극체제가 다극체제보다 오히려 안정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미소 냉전에서 얻어진 경험적인 근거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양극체제에서는 동맹국으로 인한 ’불필요한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양극체제하에서는 다극체제보다 서로의 의도에 대한 불확실성이 낮아 강대국 관계에서 혼선이 빚어질 가능성이 적다는 것입니다. 셋째, 냉전기간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를 이용해 서로를 억지(deterrence)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2013년 사망한 월츠는 생전에 미중관계의 안정성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후학들은 그가 살아서 발언한다면 미중관계 역시 미소관계처럼 안정적이라고 말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현실세계의 변화는 국제체제의 구조 측면에서 또 다른 양극체제를 가져온다. 즉,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개의 강대국이 존재하는 양극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중국의 부상에 대해 많은 학자들과 정책분석가들은 불안정성을 예측하지만, 월츠는 자신의 이론적 결론에 따라서 미국과 중국의 양극체제가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와 마찬가지로 안정적이라고 볼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국제체제의 구조는 더욱 안정적일 것이라는 낙관적인 결론을 개진할 것이다. 이러한 결론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은 반론을 제기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월츠 이론은 국제정치이론 논쟁뿐 아니라 정책논쟁에서도 핵심사항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이근욱, 『왈츠 이후: 국제정치이론의 변화와 발전』(서울: 한울, 2009), 43-45쪽.

미어샤이머 교수는 물론 자신의 전망이 틀릴 수도 있다며 그것은 사회과학의 한계 때문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전망이 예언처럼 실제가 될 것인지, 아니면 미소 냉전처럼 미중 냉전도 안정적일 것인지, 아니면 미국 유일 초강대국 체제가 오래 유지될 것인지 지켜볼 일입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북한학 박사)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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