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중국 기업에 제공한 안내서 ● 11개 호텔, 철도, 발전소 등 투자유치대상 ‘빼곡’ ● 80억 달러 규모 ‘김정은 비즈니스’ ● “공화국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담긴 사업” ● 원산을 금융 중심지로 조성할 계획도 세워 ● 전문가들 “조악하기 그지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현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18년 11월 1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2019년 북한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까지 공사를 완료하라고 지시한 곳이다. 북한군 건설 여단 돌격대와 건축 노동자들이 공기를 맞추고자 야간에도 공사 현장에서 일한다.
“투자 유치 성과 미미”
김정은 위원장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를 둘러보곤 “적대 세력들이 우리 인민의 복리 증진과 발전을 가로막고 우리를 변화시키고 굴복시켜보려고 악랄한 제재 책동에만 어리석게 광분하고 있다”면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과 같은 방대한 창조대전에서 연속적인 성과를 확대해나가는 것은 적대 세력에게 들씌우는 명중포화”라고 말했다.
북한은 2014년 6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48호를 통해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를 선포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5년 신년사에서 “대외경제 관계를 다각적으로 발전시키며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를 비롯한 경제개발구 개발사업을 적극 밀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2018년 신년사에서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를 특정해 강조했다.
요컨대 원산-금강산 개발은 ‘김정은 비즈니스’다. 북한은 원산 일대를 1호 경제 개방 대상으로 삼았으며 투자 유치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원산-금강산을 잇는 관광지대뿐 아니라 원산항을 중심으로 한 산업단지 조성 계획도 세웠다.
북한 관료들은 중국·러시아 등으로부터 투자 유치를 받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북한에서 태어난 중국 화교를 중심으로 ‘원산팀’도 꾸렸다. 원산팀은 중국 기업을 상대로 투자 유치에 나섰다. 북한 아태평화위원회는 롯데그룹에도 투자를 타진했다(‘신동아’ 2018년 8월호 ‘北아태평화위, 롯데그룹에 ‘원산 투자’ 제안했다’ 제하 기사 참조)
북한 관료와 기업인은 “공화국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담긴 사업” “대외경제 분야에서의 중요한 임무” “국가 단위에서 밀어붙이는 사업”이라고 강조하면서 투자를 권유한다. “중국도 대북 제재에 동참한 상황이어서 투자 유치 성과는 극히 미미하다”고 대북소식통은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제재 완화를 언급했으나 미국은 꿈적도 하지 않고 있다.
“원산을 싱가포르처럼 만들겠다”
‘신동아’는 북한 경제 관료 및 기업인이 원산-금강산 투자를 유치할 때 사용하는 문건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산지구개발총회사’가 작성한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 투자대상안내서’가 그것이다. 원산지구개발총회사가 2016년 말 제작한 책자로 현재도 투자 유치 제안 시 중국 기업 등에 제공하는 문건이다.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 투자대상안내서’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로 작성됐다. 158쪽 분량의 이 책자는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에 대한 소개 △투자 대상별 소개 △외국인투자자 법규 목록으로 구성돼 있다. ‘투자 대상별 소개’에는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의 청사진이 담겼다. 원산-금강산 개발 상세 내역이 보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는 400㎢ 면적으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마식령스키장지구 △울림폭포지구 △석왕사지구 △통천지구 △금강산지구로 이뤄졌다. 연간 100만 명 수준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게 북한의 목표다. “원산을 싱가포르처럼 만들겠다”는 포부 아래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북한은 원산 및 금강산 개발에 78억 달러(8조8000억 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 투자대상안내서’에 따르면 북한이 투자 유치에 나선 사업은 ‘호텔 11개’ ‘산업시설 12개’ ‘원산-금강산 철도’ ‘통천수력발전소’ 등 70개에 달한다.
책자의 1절인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에 대한 소개’는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의 중심지역으로 되어 있는 원산시는 러시아와 중국, 일본 등 인접 나라들로부터 비행기로는 1~2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으며, 3~4시간이면 동아시아의 여러 인접 나라들로부터 오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고 밝힌다.
문건은 이어 “원산-금강산관광지대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백두산, 칠보산 관광지구들과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기의 고유한 관광자원을 수많이 가지고 있는 유명한 관광지, 관광 연계지로서 동해의 진주라고 불리우고 있다”면서 “해안관광지대의 훌륭한 본보기로 될 것이며 이 지대 개발에 참가하는 모든 투자가들에게 만족한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게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오수처리장 투자 유치도 나서
북한이 기반시설(infrastructure)과 관련해 투자를 유치 중인 사업은 △신성오수정화장 △원산-금강산 철도 △통천수력발전소 △풍력발전소 등이다.
신성오수정화장은 분뇨 등을 처리하는 시설이다. 책자는 “현존 오수 정화장은 낡은 오수 설비를 갖추고 있으며 오니(오염 물질을 포함한 흙)를 자연적으로 건조시키고 있다”면서 “오수정화장을 개건해 생활 및 생태 환경을 개건하고 관광업을 활성화하며 오수로부터 에네르기(에너지)와 유기질 비료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원산지구개발총회사가 2015년 3월 20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서 ‘원산-금강산 개발계획 설명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투자설명회는 2시간가량 진행됐다. 원산지구총회사 총사장이 개발 계획과 법률 환경을 각각 30분씩 설명하고 질의응답이 1시간 동안 이어졌다. 당시 행사에 참석한 대북소식통이 전한 질의응답 내용이다.
-관광객 수는 얼마나 예상하나.
“단기적으로 30만~40만 명을 유치하는 게 목표다.” -비자 문제는?
“무비자 지역으로 하는 것을 검토한다.”
-시급한 것은 뭔가.
“오·폐수 처리시설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일부 참석자가 이 대목에서 실소(失笑)했다. 관광객 똥·오줌 처리를 언급해서다.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 투자대상안내서’에 따르면 북한은 4186만 달러를 들여 신정오수처리장을 ‘개건’하려고 한다. 그중 2053만 달러를 외자로 조달할 계획이다. 신성오수처리장 투자의 내부수익률(IRR·투자 후 보유기간 중 산출될 수 있는 자본의 연 환산수익률)은 12%라고 문건은 밝힌다. 순 현재가치(NPV)는 967만 달러로 책정했다.
‘원산-금강산 철도’ 사업은 118㎞ 철도를 개보수하는 것이다. 건설 기간 24개월, 운영 기간 30년을 제안한다. IRR은 7.3%다. 투자 유치 규모는 3억2350만 달러. 북한은 한국으로부터 철도 투자를 받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은 경의선, 동해선 철도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를 2018년 12월 진행했다. 남측 공동조사단은 12월 8일 금강산역과 원산역을 조사했다. 북측은 11월 남북 도로분과회의에서 원산-금강산을 잇는 국도를 고속도로로 현대화하는 방안을 남측에 제안하기도 했다.
1억 달러 투자 받으려는 송도원호텔
통천수력발전소는 저수지를 이용한 소규모 발전소다. 문건은 “운영된 지 90여 년이 지났으므로 토사가 쌓여 저수 용적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밝힌다. 투자 유치 규모는 780만~1040만 달러다. IRR은 제시하지 않았다.
북한은 고성군·통천군 해안가에 풍력발전소를 지으려고 한다. “초기 가능성 조사 단계”다. 문건은 “봄철과 겨울철에 바람이 세게 분다”면서 “바람 속도가 좋은 지역이 있으므로 풍력발전기들을 설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다. 외자 유치 규모는 3250만~3900만 달러, 투자 방식은 BOT(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한 시행자가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건설을 마친 후 자본설비 등을 일정 기간 운영하는 것)다.
북한은 원산-금강산 일대에 11개 호텔을 새로 짓거나 증축, 개보수할 계획을 세웠다. 그중 송도원호텔 규모가 가장 크다. 407명 수용 규모를 1000명으로 늘려 5성급 호텔로 꾸리려고 한다. 투자 유치 규모는 1억 달러로 책정했다. IRR은 16.3%다.
송도원호텔은 ‘합영’ ‘합작’ ‘쌍방이 합의하는 투자’ 등 3가지 방식의 투자를 제안한다. 합영은 투자자와 공동으로 경영하는 형태, 합작은 북한이 운영하고 계약 조건에 따라 이윤을 나눠주는 방식이다. 외국인 기업은 자본 전부를 투자해 단독으로 경영하는 형태다.
5성급 60층으로 지으려고 하는 원산호텔은 초기 가능성 조사 단계다. 공사 기간 36개월, 운영 기간 30년을 제안한다. 해안호텔은 12층 건물을 18층의 4성급 호텔로 증축하는 사업이다. 투자유치 규모는 2400만 달러, IRR은 22.7%를 제시한다. 이 밖에 동명호텔, 시중호호텔, 동정호호텔, 총석정호텔, 장내늪이동식숙소, 삼일포호텔, 삼일포별장식호텔 등이 투자 유치를 기다린다.
북한은 서비스업에서도 해외 투자를 유치하려고 한다. 1000명 수용 규모로 개축하려는 한식당 목란관(260만 달러)을 비롯해 단풍관(65만 달러), 국제음식점거리(1500만 달러), 조선음식점(455만 달러), 원산수산물종합식당(455만 달러), 장덕섬종합봉사소(초기 가능성 조사 단계), 진주관(455만 달러), 두남산식당(455만 달러), 시중호해산물식당(65만 달러), 울림폭포종합봉사소(130만 달러) 등이 그것이다.
60층 마천루 지어질까
원산에 상업지구도 마련할 계획이다. 문건은 “원산시 중동의 넓은 면적(20만㎡)에 조선과 세계 여러 나라의 이름 있는 상품들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를 일떠세우려 한다”고 밝힌다. 중심부 1만㎡에 20층 넘는 고층 건물 단지를 짓고 나머지 지역에는 3~4층 건물을 올린다. 문건은 “연간 100만 명 넘는 관광객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 대상 계획의 중요성과 유리성은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원산백화점도 735만 달러를 투자받아 개축하려고 한다. 관광기념품상점은 소규모 투자가 가능하다. 상점 1곳에 31만 달러를 투자해 운영하는 방식이다.
국제관광 및 문화교류소(6000만 달러), 원산종합봉사소(백화점, 스포츠시설 등이 입주하는 복합 시설(3575만 달러), 금강산종합봉사소(455만 달러), 건강운동관(250만 달러), 해안유희장(테마파크·1560만 달러) 원산물놀이장(워터파크·4900만 달러), 고속보트장(43만 달러) 등도 건설할 계획이다.
대중교통망 구축도 투자 유치를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관광버스(555만 달러, IRR 14.9%), 원산택시사업소(420만 달러, IRR 14.9%) 사업을 준비 중이다. 원산-금강산을 잇는 관광 여객선(1600만 달러)도 띄운다.
시중호 북서쪽에는 골프장을 짓는다. “초기 가능성 조사 단계”다. 문건은 “세계적인 골프장으로 발전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가졌다”고 설명한다. 삼일포민속거리는 “조선의 고유한 문화를 보여주고 체험하는 곳”이다. 1일 관광객 7000명을 예상하고 있다. 해금강자연공원은 “매일 수천 명의 관광객이 찾아올 것으로 예견된다”고 문건은 밝힌다. 러시아, 동남아시아에서 원산을 잇는 국제관광여객선 사업은 “초기 가능성 조사 단계”다.
외국인 투자 병원도 세우려 해
삼일포-해금강지구에는 카지노 호텔을 짓는다. “외국인 단독기업이 투자하는 방식”이다.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은 2018년 6월 1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원산, 마식령 일대에 카지노 등 관광 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투자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동아일보 2018년 6월 5일자 ‘김정은, 원산 카지노에 美 투자해달라’ 제하 기사 참조)
의료시설도 외자 유치를 통해 지으려고 한다. 동명구급병원(760만 달러, 합영 방식), 시중호구급치료소(36만 달러, 합작 방식), 시중호감탕치료원(180만 달러, 합작 방식) 등이 그것이다.
북한은 원산을 금융 중심지로 조성할 계획도 세웠다. 문건은 “외국은행 본점들과 지점들, 신탁회사들, 보험회사들, 금융 및 투자자문회사들이 들어와 금융 봉사활동을 진행하게 된다”면서 8000만 달러 규모의 ‘금융봉사소’ 투자를 제안한다. 박람회와 국제회의 유치가 가능한 ‘국제전람장’도 1000만 달러를 유치해 지으려 한다.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 투자대상안내서’는 45개 법률과 15개 규정을 나열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법률 관련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URL이 적혀 있다.
북한이 마련한 청사진대로 원산이 상전벽해(桑田碧海)된다면 2018년 6월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한 싱가포르 센토사섬 같은 관광지구가 될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
“조악하기 그지없다”
남북 경협을 검토하는 한 대기업 임원은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 투자대상안내서’를 살핀 후 “조악하기 그지없다”면서 “외국은행 본점이 들어온다는 대목은 황당하기까지 하다”고 했다. 그는 “설악산-대관령-속초-강릉 일대와 비교해보면 금강산-원산 일대의 관광지대로서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해볼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늘었으나 속초, 강릉 지역은 내국인 관광객 중심이다. 북한은 관광업을 육성하더라도 내수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은 턱없이 적다. 중국인에게 원산-금강산은 매력 있는 관광지가 아니다. 한국으로부터의 투자, 한국인 관광객이 없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물론 카지노를 세운다면 사정이 다소 달라질 수 있다.
원산에는 북한 내부 자본으로 짓고 있는 호텔 등의 공사가 한창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화교 자본도 일부 들어온 것으로 알려진다. 외부 공사를 마무리했으나 기술과 자본이 부족해 내부 공사를 못하는 곳도 있다. 껍데기만 있는 격이다. 대북 제재 탓에 구체적 실적이 미미하자 투자 유치를 장담한 간부들이 초조해졌다고 한다(68쪽 ‘원산 호텔 투자자 애타게 찾는 北기업인들’ 제하 기사 참조). 투자 유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내부 자본으로 짓는 건물들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에서 미국과 협상을 벌여 비핵화 과정과 제재 완화를 교환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와 인권 개선 등 북한의 선제적 이행 없이는 제재를 완화할 수 없다는 게 아직까지의 미국 태도다. 한국 정부는 비핵화 조치에 따라 단계적으로 제재를 풀어줘야 한다는 의견이다. 북한이 ‘김정은 비즈니스’에서 성과를 내는 가장 빠른 길은 선제적 비핵화에 돌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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