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독일식 한반도 통일은 2050년 쯤에나”
국회미래연구원 한반도 미래 공론조사에 참여한 청년들
고려대 경영학과에 다니는 류경석 씨(23세)는 이달 2일 국회미래연구원이 주최한 ‘한반도의 미래 공론조사’에 참여한 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2030년과 2050년에 남북한이 지향해야 할 미래와 피해야 할 미래를 놓고 현존하는 국가들 사이의 다양한 유형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10여 년 동안 학교에서 ‘통일 아니면 분단’ 식의 이분법적 교육을 받다가 그 중간의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런 중간의 국가간 형태들을 세계 각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왜 그걸 남북한 관계에서 적용할 생각을 해보지 못했었을까 하는 후회나 안타까움도 있었어요.”
그는 남북한이 2030년에는 우호국가(미국-캐나다), 2050년에는 ‘느슨한 연방’국가(초기 미국)가 되기를 바란다고 응답했다. 2050년에 피해야 하는 미래(회피미래)로는 경쟁국가(중국-대만)을 선택했다. 2050년 회피미래로 경쟁국가(중국-대만)를 고른 이유에 대해서는 “그 때까지도 싸우고 있으면 결국 분단된 지 100년째에도 싸우고 있는 건데 그건 좀 별로이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
남강고 1학년 김희찬 씨는 연방국가(통일 독일)를 선호하고 역시 경쟁국가(중국-대만)를 회피한다고 답했다.
“북한이랑 통일해서 힘들지언정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하고, 경쟁국가가 된다면 우리나라가 북한을 견제하느라 더 많은 예산이 들고, 그로 인해 더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선린인터넷고 1학년 육도현 씨는 반대로 회피미래로 연방국가(통일 독일)를 선택했다. 서로 다른 사상을 지닌 사람이 모여 정상적인 정치 과정을 형성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화폐통합 과정에서 남과 북의 저소득층이 경제지표 변동으로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이유였다. 대신 우호국가(미국-캐나다)를 선호미래로 꼽았다.
7일 국회미래연구원이 공개한 공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래세대(고등학생)·청년세대(20대) 중 37.4%가 2030년 ‘미국-캐나다’, 31.7%가 2050년 ‘통일 독일’과 같은 남북관계를 1순위로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2.9%가 2030년, 60.1%가 2050년에 남북관계가 ‘중국-대만’과 같은 경쟁관계로 남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편, 10년 후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한반도의 미래로는 46.3%가 ‘미국-캐나다’와 같은 우호관계를 꼽았고 30년 후 미래로는 27.4%가 ‘독일-오스트리아’와 같은 경제통합 국가를 골랐다.
서울, 인천, 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209명과 고등학생(미래세대) 31명이 참여한 이번 조사에서는 남북한이 통합되는 여섯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미래(가능미래), 선호하는 미래(선호미래),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래(회피미래)를 파악했다.
미래 남북관계의 유형으로는 군사·외교 통합 여부, 거주·이동 자유 여부, 화폐통합 여부, 행정부 통합 여부에 따라서 ①경쟁국가(중국-대만) ②우호국가(미국-캐나다) ③경제통합국가(독일-오스트리아) ④군사·외교 통합국가(중국-홍콩) ⑤‘느슨한 연방’국가(초기 미국) ⑥연방국가(통일 독일) 등이 제시됐다.
7일 국회미래연구원 보도자료에 따르면, 공론조사 결과 국민참여단은 남북한이 2030년에는 우호관계를, 2050년에는 연방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쟁관계는 2030년과 2050년 모두 회피해야 할 미래로 나타났다.
주목해야 할 특징은 독일식 연방국가로의 통일 가능 시점을 지금부터 30여년 뒤인 2050년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서독처럼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통일은 당장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현실적인 고려가 많았다는 이야기다. 설문 참가자들이 서로 만나 토론을 하고 전문가들의 설명을 들을수록 통일의 시기를 더욱 늦춰 잡았다는 점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1차 설문조사와 3차(최종) 설문조사 결과 ‘통일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1차 때보다 3차 때 통일의 시기를 늦춰 잡았다는 점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칠수록 통일에 대해 유보적인 견해를 보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조사를 맡은 한국리서치는 특별한 자료집을 배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11월 하순 최초(1차)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거주지역, 성별, 나이, 고향을 고려해 250명을 국민참여단으로 선정했다. 2일 250명 중 240명이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 리셉션홀에서 열린 공론조사에 참석했다. 8~11명이 한 조로 이루어진 25개 조의 국민참여단은 자료집을 읽고 중간(2차) 설문조사에 응답한 후 한 차례 숙의과정(학습과 토론)을 거쳐 최종(3차) 설문조사에 응했다.
30분 동안 중간설문조사 응답을 마친 국민참여단은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주최 측의 자료집 설명을 들은 후 60분 동안 토의했다. 조원은 각자 여섯 가지 시나리오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한반도의 가능미래, 선호미래, 회피미래를 생각할 때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을 공유했다. 마지막으로 숙의를 위해 더 필요한 정보도 정리했다.
토의과정을 마치고 최종설문조사를 하기 전에 국민참여단과 전문가 사이에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조마다 통일비용 조달방안, 청년세대의 통일 당위성 의문, 대북원조의 투명성, 북한체제의 변화 가능성과 각 시나리오의 연계성 등 토의과정에서 생겼던 질문을 하나씩 던졌다. 전문가 응답에는 최종현 서울대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문인철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 장기영 서울대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박진 국회미래연구원장, 유재광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참여했다.
류경석 씨는 공론조사를 마친 후 “내 의견이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될 지도 모른다는 효능감이 있었고 언젠가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좋은 곳에 쓰일 것이라는 보람도 있었다”며 “다만 시간이 짧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내 의견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아쉬움도 있었다”고 말했다. 여권이나 방문증 없이 남과 북을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다는 인천중앙여상 1학년 김하늘 씨는 “잘 알았다고 생각한 ‘통일’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며 “학교에서는 통일에 대해 역사책의 한 단원밖에는 배우지 않기에 사전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올해 5월 ‘국회미래연구원법’에 따라 개원한 국회미래연구원은 국회의장 직속으로 정당과 행정부에서 독립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측하고 전략을 설계하는 연구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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