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해를 이틀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親書)를 보낸 것은 내년 비핵화 협상 재개를 앞두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김정은식 깜짝 카드’로 풀이된다. 다시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동안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데 대한 책임론에서도 벗어나겠다는 다목적 포석이기도 하다. 어찌 됐든 이번 친서로 불투명해 보였던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2차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 외교 이벤트들도 다시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 金 “앞으로 상황 주시하며 서울 방문”
김 위원장의 친서 전달은 사전 예고 없이 이날 오후 판문점을 통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당초 새해 첫날 신년사를 발표할 때까지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깬 것으로, 신년사를 통해 전 세계에 발신할 자신의 메시지에 대한 주목도를 극적으로 끌어올리려 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이날 일부 공개한 친서는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 각하. 평양에서의 우리의 상봉이 어제 일 같은데 벌써 100여 일이나 지나 지금은 잊을 수 없는 2018년도 다 저물어가는 때가 되었습니다”로 시작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김 위원장은 2019년에도 문 대통령과 자주 만나 한반도 평화 번영을 위한 논의를 진척시키고 한반도 비핵화 문제도 함께 해결해 나갈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고 전했다. 평양 정상회담에 이어 서울 답방으로 열릴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계속 비핵화 문제를 의제에 올려놓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 동시에 미국에 비핵화 의지가 여전하다는 신호를 보내면서 내년에도 남북관계를 비핵화 협상을 이끌어가는 동력으로 삼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고위급회담, 실무회담으로 직접 맞부딪치기보다는 문 대통령을 ‘네고시에이터’로 활용해 비핵화 조치에 대한 미국의 동시 보상을 이끌어내겠다는 의중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변인이 “김 위원장이 앞으로의 상황을 주시하면서 서울을 방문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의 상황’은 북-미 대화를 의미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과 답방을 연계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셈이다.
김 위원장은 또 “내년에도 남북의 두 정상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나아가자는 뜻을 전했다”고 김 대변인은 말했다. ‘번영’을 내년 남북관계의 목표로 내건 것은 비핵화와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 외에 대북제재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던 남북 경제협력 확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다른 문구에 대해서는 “정상들끼리의 친서라서 그대로 전달하는 건 외교 관례에 어긋난다. 요약해서 의역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 연초 남북, 북-미 정상회담 꿈틀 김 위원장의 깜짝 친서로 멈춰 섰던 비핵화 대화는 내년부터 다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대북 특별사절단이 다시 평양을 방문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여기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2차 북-미 정상회담 등 내년 초 비핵화 협상의 밑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다. 청와대는 김 위원장의 내년 1월 답방 가능성을 아직 열어두고 있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최근 “북-미 정상회담이 연초에서 머지않은 날 개최되길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의 속내는 1일 신년사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날 듯하다. 자신의 비핵화 의지를 여전히 의심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비핵화에 나서면 확실하게 대북제재를 해제해 달라는 메시지를 낼 공산이 크다. 일각에선 한반도 비핵화가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금지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주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20일 “조선(한)반도 비핵화란 우리의 핵 억제력을 없애는 것이기 전에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의”라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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