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서로 마음의 빚 털고 ‘서울 답방’ 자기 카드로
교착상황 고려하며 비핵화 주도할 묘수 고심했을 듯
북한이 신년사를 발판으로 2019년 한반도 정세 주도권을 유지하려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올해 북한은 줄곧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결단, 노동당 중앙위원회의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 선택,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등 선제적 비핵화 조치가 한반도 평화 조성을 이끌었다고 강조해왔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1일 논설에서도 “(올해) 세계 언론들은 무시할 수 없는 정치군사 강국으로서의 거대한 영향력으로 국제정치정세를 주도해나가는 우리 공화국에 대해 앞을 다퉈 격찬했다”고 밝혔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조성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는 것은 북한으로선 양보할 수 없는 과제다. 자칫 대북 경제제재에 굴복해 핵을 포기하는 모양새가 되면 정권의 권위가 떨어지고 내부 반발도 거세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3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격적으로 친서를 보낸 것도 ‘주도권 정치’의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구두로 약속한 연내 답방을 이행하지 못해 마음의 빚을 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초청에 묵묵부답한 채로 한해를 마무리하는 대신 예의를 갖춰 거절과 아쉬움을 표함으로써 빚을 털어내게 됐다.
김 위원장은 친서를 통해 서울 답방을 ‘문 대통령의 카드’가 아닌 ‘자신의 카드’로 만들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향후 답방을 하게 되면 문 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했다기보다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는 측면이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남북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구상을 밝히면서 이를 위해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서울을 답방하겠다고 말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북미 비핵화 협상 측면에서도 리더십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북한으로선 전향적인 추가 비핵화 제안을 내놓기는 어려운 상황이어서 김 위원장이 어떤 메시지로 돌파구를 마련할지 주목된다.
북한은 2017년 신년사에서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과 선제공격 능력을 계속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2018년 1월엔 “국가 핵무력 완성의 대업을 성취했다”며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고 밝혔다. 올해 신년사에도 핵과 관련한 메시지가 어떤 식으로든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올 한 해 비핵화의 구체적 대상과 순서를 스스로 정하는 ‘주동적 비핵화’ 전략을 구사해왔다. “우리가 정한 시간표대로” 선제적 비핵화를 할 테니 미국도 상응조치를 하라는 식이었다.
이런 접근 방식은 북한이 요구하는 ‘대북 경제제재 해제’는 완전한 비핵화가 달성돼야 가능하다며 핵 신고나 비핵화 로드맵을 요구하는 미국의 입장과 충돌하면서 북미 협상의 교착으로 이어졌다.
일단 김 위원장이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를 신년사에서 언급하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조건부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카드까지 내놓고 미국의 상응조치를 타진하는 상황인 만큼 추가 양보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한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자”며 기존에 밝힌 원론적 입장만 재확인할 경우 협상 동력을 유지할 순 있어도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긴 역부족이란 점에서 북한의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