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정권교체기인 2017년에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가 상대적으로 많아 보이게 하려고 국채 조기상환을 미루고 신규 적자국채를 발행하려 했다는 정황의 카카오톡 대화록이 공개됐다.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은 1일 고려대 커뮤니티 ‘고파스’에 당시 기재부 차관보가 2017년 국가채무비율을 가급적 낮추지 말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내용의 대화록을 올렸다. 이는 전날 구윤철 기재부 제2차관이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을 반박하며 “적자국채 발행은 대내외 불확실한 상황을 감안해 검토했을 뿐 국가 채무비율을 높이려 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과 배치된다. 신 전 사무관은 “공개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라며 이번 주중 추가 폭로를 예고했다. 기재부는 2일 신 전 사무관을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 “당시 차관보, 국가채무비율 덜 떨어뜨리라 주문”
신 전 사무관이 1일 공개한 카카오톡 대화록에 따르면 2017년 11월 14일 대화명 ‘(기재부) 차관보’는 단체 채팅방에서 신 전 사무관에게 “핵심은 17년 국가채무비율을 덜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기재부의 재정 담당 차관보는 조규홍 현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이사다.
신 전 사무관은 이날 올린 글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을 덜 떨어뜨리라는 이야기는 최대한 (국채를) 발행하라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앞서 신 전 사무관은 2017년 세수가 많아 국채를 발행할 필요가 없는데도 청와대와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가 그해 하반기 발행한도인 8조7000억 원까지 국채를 발행할 것을 지시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임기가 포함된 2017년 말 기준 국가채무비율을 의도적으로 높여 현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상대적으로 양호해 보이도록 ‘통계 마사지’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신 전 사무관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차관보는 또 다른 카톡 대화에서 “우리 2안처럼 계산하면 2021년 국가채무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좀 계산해 보라”고 신 전 사무관에게 지시했다. 2021년은 차기 대선(2022년)을 앞둔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해다. 그 해의 경제지표가 선거에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신 전 사무관은 이 카톡 이미지를 추후 언론 인터뷰에 활용한다면서 삭제했다.
○ 국채 이자는 고스란히 세금으로 충당해야
적자국채는 세수가 지출보다 적을 때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발행한다. 국채 발행이 많아지면 채권값 하락으로 시장금리가 올라가 대출자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정부도 국채이자가 늘어나고 국가채무비율이 높아져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적자국채 발행에 따른 국가채무비율 상승은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돼 왔다. 박근혜 정부 때도 복지예산을 늘리고 추경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총 160조 원이 넘는 적자국채를 발행하자 현재 여당인 당시 야권이 이를 비판했다.
이번 정부는 기초연금 인상과 아동수당 신설 등 대규모 재정이 드는 복지정책을 잇달아 추진해 시간이 지날수록 재정이 악화될 우려가 크다. 현 정부 입장에서는 2017년 국가채무비율을 미리 높여놓으면 임기 말에 나라 재정을 악화시켰다는 비판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정학자는 “경기가 나빠지는 상황에서 국채를 발행하거나 조기상환을 늦추면 투자와 소비가 위축돼 경기를 악화시킨다”면서 “정부의 조치는 경제적 논리가 아닌 다른 논리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신 전 사무관의 주장처럼 청와대와 기재부가 국채 8조7000억 원 발행을 강행했다면 1년 이자부담만 2000억 원에 이른다. 이 비용은 고스란히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기재부는 1일 “적자국채 발행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비율을 높이려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국채 발행과 관련해 청와대의 의견 제시는 있었지만 강압은 없었다”고 공식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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