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당국에 망명 의사를 밝힌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 대사대리는 부친과 장인이 대사를 지낸 외교관 집안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선 평양 중심가인 고려호텔 옆에 거주하는 등 경제적으로도 최상류층이었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유럽 지역 금고지기 역할을 하면서 김 위원장이 타는 영국제 호화 요트와 고급 와인 등 사치품을 평양으로 조달하는 데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의 치부를 가장 잘 아는 인물 중 한 명인 셈이다.
○ 3개 언어 능통한 ‘외교 금수저’
3일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와 정보당국에 따르면 조 대사대리의 부친은 1980년대 아프리카 국가의 대사를 지냈고 2000년 사망했다. 장인은 리도섭 전 주태국 대사다. 리도섭은 외무성에서 우리로 치면 의전국장 자리를 오래 맡았으며, 김일성 정권 때 정상 행사를 관리했다. 주홍콩 총영사도 거쳤다. 이들 외교 사돈 집안은 나란히 고려호텔 옆에 있는 평양의 외무성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이는 평양에서 손꼽히는 고급주택이다. 조 대사대리의 아내는 리광순이며 평양의과대학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태 전 공사는 “조성길 장인하고 저는 오랫동안 같이 근무했다. 조성길은 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경제력과 가문이 좋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조 대사대리는 44세(혹은 48세)이며 평양외국어대 프랑스어과를 나왔다. 1999년경 외무성 근무를 시작한 경력 20년의 외교관이다. 2015년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북한대사관에 3등 서기관으로 갔고, 2017년 1등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그러다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이탈리아 정부가 당시 문정남 대사를 추방한 뒤 대사대리를 맡았다. 현지에서는 아내, 아들 1명과 생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정보 소식통은 “독일과 영국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탈리아도 북한 외교관들이 선호하는 부임지 중 하나”라고 했다.
조 대사대리는 영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에도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대사대리와 친분이 있던 태 전 공사는 이날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조성길은 유럽에 오래 있었던 인물이다.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에 능숙하고 똑똑하다”고 했다. 망명 배경에 대해서는 “북한에서는 모두 충성도 높은 것처럼 행동하니까 (속내를) 알 수는 없다. 다만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과 자유에 대한 갈망, 그리고 자녀의 미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 조성길 ‘신년사 소파’ 조달했나
조 대사대리는 북한의 외화벌이 기관인 노동당 39호실의 유럽지국 총책임자였던 김명철이 2015년경 이탈리아로 망명한 후 그를 대신해 당의 유럽 자금총책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종 외화벌이에 나서는 한편 평양 지도층으로 가는 사치품과 밀수품 조달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앞서 김 위원장이 절친인 미국프로농구(NBA) 출신인 데니스 로드먼과 함께 탔다는 영국제 호화 요트도 이탈리아를 거쳐 평양으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밀수품엔 고급 와인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제 고급 가구 등도 포함된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일도, 김정은도 사무실 내부 인테리어를 보면 이탈리아식이다. 이번 신년사도 (노동당 본청) 접견실에서 했는데 가구들을 보면 이탈리아제와 유사하다”고 했다.
북한의 밀수 상황뿐만 아니라 비핵화와 관련된 정보들도 조 대사대리의 입을 통해 흘러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대사관이 바티칸 교황청도 상대하는 만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관련 정보도 나올 수 있다. 태 전 공사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핵 관련 정보다. 김정은이 내부적으로 어떤 과업을 주고 어떤 전략전술을 쓰고 있는지, 조성길이 대한민국에 온다면 많은 정보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