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바퀴 도는 대일외교 ‘투트랙 전략’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8일 03시 00분


과거사-미래 문제 분리대응 구상
위안부 이어 징용판결 불거지자 한일간 소통단절-신뢰저하 불러
레이더 갈등해결 실마리 못 찾아 8월 정보보호협정 연장도 불투명
“한마리 토끼도 제대로 못 잡아”


화해치유재단 해산,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이어 레이더 갈등까지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사안들이 잇따르자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 기조인 ‘투 트랙’ 전략을 놓고서도 말이 많다. ‘과거사 문제는 과거사 문제대로,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위한 한일 간의 협력은 협력대로 별개로 해 나가자’는 취지는 좋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뛰는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한 마리도 못 잡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출범 후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통해 한일 관계 투 트랙 전략 구상을 내놨다. 독도 및 역사 왜곡에는 단호히 대응하되, 미래지향적인 협력동반자 관계 발전을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과거사 문제 해결은 여전히 답보 상태고, 한일 간 협력 면에서도 지지부진했다. 2016년 체결된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을 두 차례 연장했지만 최근 한일 레이더 갈등에서 보듯 군사 분야 협력 역시 과거사에 얽혀 있다. 한일 군수지원협정(ASCA)의 논의와 한일 통화스와프협정 재추진도 난항을 겪었다.

투 트랙이 제 역할을 못하는 건 무엇보다 과거사 이슈가 쉽사리 마무리되지 않으면서 한일 간 지속적인 논란의 진앙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그 결과물인 화해치유재단은 해산했지만 남은 일본 정부의 재단 출연금 57억여 원을 어떻게 해결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여전히 ‘휴화산’ 상태다. 지난해 11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 배상 판결이 난 이후에도 정부는 “관계부처 협의와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과거사 문제가 현안으로 계속 불거지는데 어떻게 미래 문제와 분리 대응이 가능하겠느냐. 그러다 보니 레이더 갈등처럼 해프닝으로 그칠 일도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장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자신이 있다면 일본 주장대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다퉈서 우리가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확실히 이길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정부의 적극 대응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 소장은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같은 사안에 대해 개인적 청구권은 아직 소멸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법적으로 소송할 권능은 소멸됐다는 모순적인 판결을 내린 만큼 우리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간 동영상 맞불 공개로 이어지고 있는 레이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군 당국 간 실무협의 개최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일각에선 갈등이 장기화되면 8월로 계획된 GSOMIA 연장이 불발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본이 레이더 이슈와 관련된 허위 주장을 계속하며 사과하지 않을 경우 우리 정부가 나서 협정 연장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GSOMIA 체결은 과거 한국 정부가 아닌 일본 정부가 한국에 위성 관련 정보 등을 제공하는 대가로 북한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군이 레이더, 정찰기 운용 등을 통해 수집한 대북 군사 정보 등을 제공받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섰던 사안이다. 하지만 GSOMIA 파기는 한미일 3자 군사협력의 뇌관을 건드리는 문제인 만큼 파기까지 이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여전히 많다. 군 관계자는 “GSOMIA는 한미일 모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맺은 협정으로 GSOMIA까지 건드리는 건 우리 정부로선 엄청난 부담”이라며 “한일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만큼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한기재·손효주 기자
#한일 관계#문재인 정부#투트랙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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