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7~10일 3박 4일 일정으로 중국을 전격 방문한 것에 대해 미국은 일단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서 북중이 또 한번 밀착 행보를 보였지만 앞서 3차 방중 당시와 같은 날선 반응은 자제한 채 추이를 지켜보는 분위기다.
미국 국무부는 7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의 4차 방중과 관련한 언론의 논평요청에 “언론과의 소통은 신변안전이나 재산보호,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것으로 판단되는 사건과 쟁점에만 제한된다”면서 답변을 거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이 베이징에 도착한 지 약 3시간 뒤인 한국시간 8일 오후 12시 50분께 트윗 메시지를 올렸으나, 김 위원장의 방중이나 북한과의 협상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트윗에서 “과거에 만들어진 오판으로 인한 전쟁들과 우리가 하고 있는 일로 수혜를 누리는 부자 나라들로부터 군사적 재정 지원을 받지못하는 전쟁은 마침내 영광스러운 종식을 맞게 될 것”이라고 ‘종전’을 거론했다. 하지만 이는 한국을 비롯해 동맹국과의 방위비 분담 협상과 시리아 철군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미국의 신중한 반응은 북미 교착 상황에서 있었던 지난해 6월 김 위원장의 3차 방중 이후 ‘중국 배후론’을 제기하며 날을 세웠던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달 1일 미중정상회담 이후 북한 문제에서 미중간 공조를 강조하고 있는 것과 맞물려 더욱 주목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김 위원장이 중국으로 향한 7일 언론 인터뷰에서“중국은 무역전쟁과 별개로 북한 비핵화를 위한 좋은 파트너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발언한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품페이오 장관이 인터뷰 당시 김 위원장의 방중 관련 동향을 인지하고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7~8일 베이징에서 미중 차관급 무역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우리 외교부 당국자가 구체적 시점은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관련 동향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밝힌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미중 무역협상이 진행 중인 중국 상무부 청사와 북중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인민대회당 간의 거리는 약 1.4㎞에 불과하다.
중국이 미국과 무역협상 타결을 시도하는 시점에 김 위원장을 초대했다는 점에서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사전 내용을 공유받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경우 중국과의 공조를 강조한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미중 무역전쟁과는 별개로 김 위원장에게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설득해줄 것을 주문하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미국으로부터 무역, 인권 등과 관련해 전방위적 압박을 받고 있는 중국이 사전에 김 위원장의 방중 계획을 통보했다면 이는 어떤 의도가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그간 미국의 날선 반응에 따라 당초 북한 정권수립 70주년인 9·9절 계기 추진됐던 시진핑 주석의 방북을 추진했다가 취소하는 등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며 나름대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해왔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현재 베이징에서 미중간 무역협상이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에 김 위원장의 방중을 사전에 알려줬다면 그것은 이 상황을 활용하려는 목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북 영향력을 과시함으로써 미국의 대중 압박을 견제하려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4차 방중에 대한 미국의 신중한 반응은 북미 교착 장기화 상황과 관련한 미국 내 비판을 의식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김 위원장이 1일 신년사에서 미측의 상응조치를 재차 요구하며 “새로운 길”을 위협한 데 이어 북중간 소통이 재개됐다는 점에서 비핵화 협상이 난항을 지속중이라는 신호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협상이 순항중임을 강조하며 2차 북미정상회담 조기 개최 의지를 강조한 직후 4차 방중이 이뤄진 것도 부담스런 지점이다.
미국의 보수성향 국익연구소(CNI)의 해리 카지아니스 국방연구국장은 김 위원장이 4차 방중에 나선 의도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에 ‘미국과 한국이 제공할 수 있는 것 외에 외교적, 경제적 선택권(옵션)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려는 것”이라며 막강한 대북 영향력을 지닌 중국과 북한의 밀착은 미국의 ’최대한의 압박‘전략을 쉽게 와해할 수 있는 상당한 우려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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