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남한 대학생 세 명은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예비대학생을 위한 ‘새내기 보드게임’을 만드느라 동분서주 했다. 같은 학회나 동아리 소속도 아니었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실현해 나갔다. 독특한 실험의 주인공 장예은(한양대 교육학과 3학년), 박우준(서강대 전자공학과 3학년), 그리고 박나비(연세대 독어독문학과 1학년) 씨.
보드게임은 판 위에서 말이나 카드를 놓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진행하는 게임을 말한다. 한국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후배들이 게임을 하면서 대학생활의 팁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실제로 이들이 만든 보드게임을 하면 대학에서 많이 쓰는 외래어에 익숙해 질 수 있고, 학교 생활 중에 일어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터득할 수 있다.
레포트(Report·교수님께 제출하는 보고서 형식의 과제)나 PT(Presentation·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일) OT(Orientation·입학생들을 모아놓고 학교생활 전반에 대해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는 행사) 등 한국 학생들에게는 익숙하지만 탈북민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들을 알 수 있다. ‘다른 주장에 반대의견을 말하기가 익숙하지 않니?’ ‘그럼 글로 너의 생각을 정리해봐. 일기 쓰기부터 어때?’ 등 선배의 자상한 조언도 들어 있다.
탈북민의 언어로 된 일기장과 한국 학생의 언어로 된 같은 내용의 카드를 맞추어 대학생처럼 18학점을 채우면 승리하는 구조의 게임도 있다. ‘일기장 공감(매칭)’이라는 이름으로 흩어진 과제카드와 지식카드를 맞추는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생활의 ‘꿀팁’을 얻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모든 외래어와 지식을 전달할 수는 없기 때문에 ‘문제 해결 방식’과 ‘학습 필요성’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보드게임을 원래 좋아하셨나요?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보드게임 카페에서 몇 시간씩 온갖 보드게임을 해보고요, 해외의 보드게임 포럼도 찾아보고, 주변에 보드게임 마니아 친구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였어요. 아무리 의의가 좋아도 게임이라는 플랫폼의 특성상 재미가 없으면 생명력을 가질 수가 없잖아요.”
―게임 속에 들어갈 내용은 어떻게 만드셨나요?
“주변의 지인, 지인의 지인, 지인의 지인의 지인까지 총동원해 탈북민 대학생 선배들의 ‘꿀팁’을 얻기 위해 자문을 구했습니다. 한번 인터뷰 한 탈북민에게 그 분의 지인을 소개 받아서 인터뷰하기도 했고요. 다른 솔루션을 들고 가서 다시 인터뷰하기도 했어요. 방학 이후에 이번 학기에 인터뷰한 사람들까지 수를 세면 고등학생과 대학생 포함해서 50명 가까이 될 거예요.”
이들은 현재도 게임 메커니즘을 수정해나가는 중이라고 전했다. 6개월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들었지만, 부족한 부분이 보여 보완하면서 계속 완성도를 높여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앞으로 여러 차례 게임 테스트를 진행한 뒤 최종 게임을 완성하면 이를 대안학교에 배포할 예정이라고 했다.
물론 이들이 처음부터 보드게임을 만들기로 했던 건 아니었다. 탈북민 대학생 후배를 돕자고 의견을 모았지만 방법을 찾는 과정에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처음엔 대학교 공부를 옆에서 바로 도와주는 멘토 프로그램을 떠올렸습니다. 각자 다니는 대학교에 찾아가서 교직원분들과 도입 가능 여부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이야기해보았습니다. 과제에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범위를 좁혀 PPT 제작 가이드를 만들기 위해 대안학교 선생님도 만났는데요. 이보다는 조금 더 흥미를 느낄 소재여야 예비대학생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향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또 어떤 시도를 하셨나요?
북한에서 온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을 인터뷰를 해보니 친한 선후배가 적어서 도움을 받을 사람의 풀 자체가 작더라고요. 원인을 알아보니, 다른 남한 출신 친구들과 같이 친분을 쌓을 만한 공통 관심사나 소재가 별로 없기 때문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소재를 만들어 주는 모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전통주 소모임’ 아이디어를 만들어봤습니다. 많은 이들이 즐겨 마시는 ‘술’로 공감대를 찾는 것은 어떨까?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 북한 전통주를 함께 만들며 서로 알아가는 행사를 기획해 봤어요. 근데 돈이 많이 들 것 같더군요.
외래어 포스터와 웹툰도 있었어요. 탈북민 대학생 선배들을 인터뷰한 결과 ‘학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영어와 영어를 근간으로 하는 다양한 외래어들’ 때문이라는 공통된 반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착안해서, 도움을 주려는 방향을 외래어로 한정해보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돈을 주고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실제로 제작하지는 못했어요.“
―결국 먼 길을 돌아 보드게임에 이른 거군요.
”여러 사람을 인터뷰 하고 다양한 문제의식 하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한 뒤 가장 마지막으로 만든 시제품이 이 보드게임인 거예요. 앞선 포스터, 웹툰보다 좀 더 재미있게 접할 수 있고, 더 능동적으로 직접 해보면서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 끝에 나온 겁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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