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도 금지하며 “북-중 우호 영원하리라” 외친 북한 예술단 공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7일 16시 14분


공연내용 유출 막으려 관람객 휴대전화 소지 막고
“북한 사회주의는 우리 생명, 버리면 죽음” 노래 연이어 불러
안면인식 통과 못하면 입장 불허, 실명제 도입
북한 예술단 공연 위해 인기공연 취소하자 중국인들 불만



북한 예술단의 26일 저녁 베이징(北京) 국가대극원 공연은 삼엄한 통제 속에 관람객들이 휴대전화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통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관람객은 중국 공산당원들과 가족, 북한인들로 관람이 제한됐다.

이날 다른 공연을 보기 위해 베이징 한복판 톈안먼(天安門)광장 옆 대극원을 찾은 중국인들은 안면인식 장치 등을 통해 실명을 확인해야 입장할 수 있는 이 공연이 열린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중국 당국이 일반에는 공연 날짜와 장소조차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란봉악단 출신 유명 여성 가수들을 앞세운 북한 예술 공연단은 “북-중 우호가 영원할 것”이라고 외치면서 “북한 사회주의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3년 전 2015년 12월 현 삼지연관현악단장 현송원이 이끌었던 모란봉악단이 갑자기 베이징 국가대극원 공연을 취소하고 철수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았던 북-중관계가 북핵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혈맹 수준으로 회복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 “북한 사회주의 버리면 죽음” 부른 공연

이날 공연은 오후 7시반부터 9시 10분경까지 이어졌다. 동아일보·채널A 취재진이 입수한 공연 팸플릿에 따르면 공연은 ‘조중(북-중)친선 영원하리라’를 합창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공연 시작 때 북한 인민군 제복을 입은 공훈국가합창단이 이 노래를 막 부르기 시작하는 모습이 동아일보·채널A 취재진에 포착됐다. 공훈국가합창단과 북한 가수들은 “압록강 푸른물이 변함없듯이 조중 친선 그 역사도 영원하리라/기쁨도 시련도 함께 나누며 세월 넘어 친형제의 정 이어왔어라/누리를 진감하는 친선의 노래/대를 이어 더 높이 울려퍼지네/사회주의 한길에서 굳게 잡은 손/ 위대한 새 역사를 펼쳐가리라”라는 가사를 이어갔다. 팸플릿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에서 악수하는 사진이 담겼다.

북한 예술단은 북-중 우호를 강조하기 위해 북한과 중국 노래를 번갈아 불렀다. ‘공산당이 없으면 새 중국도 없다’ ‘사회주의 좋다’ ‘나의 중화민족을 사랑하네’ 등의 중국 노래가 등장했다.


지난해 평창겨울올림픽 때 한국에서 공연한 적 있는 모란봉악단 출신의 공훈배우(북한의 예술인들에게 수여되는 국가 영예 칭호) 류진아, 김유경, 송영 등이 북한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전가요를 연이어 불러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검은 구름 몰아치고 유혹의 바람 불어도/우리당이 제일이요, 사회주의 제일일세/ 붉은기 높이 들고 사회주의 지키세”(‘사회주의 지키세’), “수령 당 인민이 하나로 뭉친 강국의 이 기상 꺾을 자 없다”(‘사회주의 전진가’) “우리는 영원히 사회주의와 자기의 운명을 함께 하리라/사회주의는 우리의 생명, 사회주의는 우리의 신념/당을 믿고 끝까지 가리라”(‘사회주의 오직 한길로’), “불길속에서 강철이 단련되듯이/시련속에서 우린 더 강해지여라”(‘전진하는 사회주의’), “지키며는 승리요, 버리면 죽음일세/향도성(영도자) 두리에 더욱 굳게 뭉치세/우리 당이 제일이요, 사회주의 제일일세/붉은 기 높이 들고 사회주의 지키세”(사회주의 지키세) 등을 이어갔다.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은 26일 밤 짧은 보도에서 북한 예술단이 중국 노래를 부른 것만 소개했다. 신화통신이 설명 없이 공개한 사진 1장은 북한 가수들이 한복을 입고 북한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노래를 이어 부르는 장면이었다.

북한 예술단을 이끈 것으로 알려진 현송월은 팸플릿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팸플릿에는 수석지휘자로 삼지연관현악단 예술부단장 장룡식을 소개했다.

공연 현장에서 만난 중국 측 관계자는 “27, 28일에도 오후 7시 반에 공연하지만 일반인에는 비공개”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28일 마지막 공연을 관람할 것으로 예상된다.


● “중국 당·정·군 관련 인사만 관람”

북한 예술단이 공연한 국가대극원 오페라홀은 2200여 석이 꽉 ¤다. 하지만 공연을 주관한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는 관람 대상을 당원들과 가족, 중국에 거주하는 북한인들로 제한했다. 중국 측 관계자는 “관람 대상은 (중국 당·정·군) 관련 인사”라고 말했다. 중국 당국은 티켓 양도를 막기 위해 실명제 입장 방식까지 도입했다.

동아일보·채널A가 확인한 이 공연 티켓에 따르면 관람객들은 신분증을 지참해야 할 뿐 아니라 “휴대전화 보관”을 요구받았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공연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관객들이 공연을 촬영하는 것을 완전히 차단하려는 조치다.

국가대극원은 오페라홀, 연극홀 등 공연장 구역으로 들어갈 때 티켓과 보안 검사를 1번 통과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북한 예술단 공연은 이 보안 검사 뒤에도 공연이 열린 오페라홀로 입장할 때에 입구에서 보안요원들이 신분증 검사와 안면인식 장치를 통해 티켓 발행 대상과 동일인인지 다시 확인했다. 신분이 일치하지 않은 관람객들의 입장을 거부하고 돌려보내는 장면도 동아일보·채널A 취재진에 포착됐다.


공연 시작 전 공연장 현장에서 만난 중국인 관객은 자신을 “관료 가족”이라고 소개하면서 “친구가 표를 마련해줘 따라왔다. 공연 내용을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신원 확인 때문에 길에 줄을 선 중국 관객들에게 ‘북한 예술단 공연을 보러 왔느냐’고 묻자 상당수 중국인들이 “잘 모르겠다” “말할 수 없다”며 답을 피했다.

이날 공연 현장에는 한복 입은 북한 여성 등 북한인들도 많이 보였다. 현장에서 만난 북한 측 관계자는 ‘어떤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왔느냐’는 물음에 “무슨 질문을 해도 답할 수 없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공연장 입구에서는 상좌(북한의 연대장급) 계급장의 북한 인민군 제복을 입은 인물이 북한인 관람객들을 안내하는 모습이 보였다.

공연이 끝난 뒤 중국인 관객들은 “공연이 매우 좋았다” “감동적이었고 열정적이었으며 깊은 정이 있다”고 답했다. 어떤 순서가 가장 좋았느냐는 질문에는 대부분 “다 좋았다”고만 답했다.

이날 저녁 비슷한 시간에는 연극과 음악회 등 다른 공연 3건이 같이 열렸다. 하지만 다른 공연을 보러온 관객들은 국가대극원의 중심인 오페라홀에서 ‘북한 예술단 공연’이 열린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국가대극원의 공연 일정에조차 올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 예술단의 리허설(24~25일) 및 공연(26~28일)을 위해 중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22~26일 공연, ‘리어왕’의 27일 공연이 갑자기 취소됐다. 웨이보(중국의 트위터 격)에는 “저녁이 공연인데 아침에야 취소 통보를 받았다” “취소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다” 등 중국 당국의 무성의에 불만을 표시하는 목소리가 잇따라 올랐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베이징=권오혁특파원 hy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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