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원 기자의 우아한] ‘방위비 분담금’, 이름부터 틀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31일 15시 13분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협상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주한미군의 지위 및 규모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 더 주목받으며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뭐가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짚어 보겠습니다.

‘특별한’ 협정의 3가지 패턴

1990년대에 시작한 과거 협상을 분석해 보면서 3가지 유의미한 패턴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첫째, 협상 타결은 대부분 시한을 넘겼다는 점.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던 2차, 3차 그리고 노무현 정부 시절인 7차 협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해를 넘긴 ‘지각 타결’이었습니다.

둘째, 과거 협상에서는 미국이 장기 협상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잠시 후 설명할 협정의 기본속성 탓이기도 한데 최근 보수 정부(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두 번의 협정은 모두 5년짜리로 타결됐습니다. 당시 협상 당사자들은 “주한미군기지 이전비용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싶다는 미국 측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셋째, 한미관계의 부침과 협상타결 지연은 일정 정도 상관관계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시한보다 6개월이 지연된 상황에서 협상이 타결된 6차 협상 당시에는 북핵 협상 및 남북관계 진전과 관련해 노무현-부시 행정부가 정면충돌하던 시기입니다. 두 번째로 길었던 협상 지연인 2002년 4월의 경우에도 김대중 정부와 부시 행정부가 북한 핵문제로 갈등을 겪던 때입니다.

방위비 분담금 협정이 ‘특별한’ 이유

이제부터는 협상의 본질에 대해 한발짝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우선 왜 특별협정인지가 중요합니다. 주한미군 주둔에 있어 가장 중요한 협정은 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협정(SOFA·1967년 발효)입니다. SOFA에 따르면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에 필요한 토지와 건물만 제공하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1990년대 들어 걸프전 등을 치르며 미국이 추가적인 경비지원을 요구하면서 규정을 수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한(special)’이라는 미사여구를 동원하게 된 것입니다.

이른바 방위비 분담금으로 명명된 SMA의 항목이 무엇인지도 이번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2018년 기준으로 방위비 분담금의 배정액 현황을 보면 △군사건설비(46%) △인건비(39%) △군수 지원금(15%)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주한미군의 주둔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순수한 행정 비용의 규모를 따져서 그에 맞춰 배정하는 것이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협상은 너무도 ‘정치적인’ 협상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주한미군의 주둔을 대전제로 하고 그 주둔에서 발생하는 행정적인 비용에 대해 한미가 적정한 비중으로 부담을 나눠지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협정이 잘 타결되지 않을 경우 마치 주한미군의 주둔이나 조건 등에 변경을 가할 것처럼 접근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주한미군의 전략 자산의 한반도 순환배치 문제를 운운하고 현재 진행형인 북한핵협상과 연계하려는 태도 또한 한국민들의 인식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과정에서 ‘심리적 저항선’을 언급하며 1조 원 불가라는 가이드라인을 외치는 것 역시 협상에 대한 지렛대가 적은 ‘약소국’ 외교의 한계를 스스로 자인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이름이 틀렸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이라는 명칭이 틀렸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예컨대 주한미군 주둔 행정 비용에 대한 협상 같은 것이 SMA의 본질에 더 가까운 이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 2019년 우리의 국방비 예산은 46조 7000억 원이고, 현재 한미동맹의 근간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많아야 1조 원 정도 규모의 주둔 편의비용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깟 이름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 하실지 모르지만 형식은 내용을 규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협정의 본질을 세세히 모르는 대중들의 머리 속에는 현재 한국과 미국이 대한민국의 방위를 논하는 무시무시하고 ‘엄청나게’ 중요한 협상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차제에 협정에 대한 한국이름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PS: 당연히 미국(더 정확히 말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달라는 대로 다 주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쫀쫀하게 따져서 진짜로 미군 주둔에 필요한 비용을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주자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도 호구(sucker)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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