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과거 남아프리카나 리비아식 모델이 아닌 새로운 창의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미국 국무부 등 행정부에 대북 협상전략을 조언해온 토비 돌턴 카네기국제평화기금 핵정책연구소장은 완전한 북핵 폐기를 위한 접근법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선(先) 핵 폐기, 후(後) 보상’을 핵심으로 하는 ‘리비아식 모델’이나 북한의 자발적 핵 포기를 뜻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식’ 모델은 현실성이 없고 북한도 이미 퇴짜 놓은 상태다. 그런 만큼 2020년까지라는 한시적 중간지대를 활용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봉인(CVC)’은 새로운 미래를 위한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동결’ 대신 추가 활동을 막는 자물쇠 격인 ‘봉인’은 과거보다 강력해진 접근법이기도 하다.
○ “동결 아닌 봉인”
돌턴 소장은 CVC에 대해 “(핵미사일) 실험이나 핵물질 생산 등을 포함한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한다”며 “여기엔 미사일과 핵탄두의 디자인 및 개발, 부품 생산 등도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동결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으로 “그 과정은 감시(모니터링)를 통해 검증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완전한 비핵화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예상되는 만큼 북한의 추가적인 핵능력 강화를 막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핵 잠금 장치부터 채울 필요가 있다는 논리인 셈이다. 하지만 CVC 범위에는 이미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는 포함되지 않았다. 돌턴 소장은 “CVC는 과정일 뿐 최종 목표점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로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핵무기를 거론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CVC가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논쟁을 낳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만 북한이 이미 보유한 핵을 포함하는 보완책을 추가로 마련할 수 있다면 북-미 양측의 핵문제 해법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 “시차를 둔 핵신고 목록”과 경제적 상응 조치
돌턴 소장은 북한의 핵신고 목록 문제에 대해선 한층 유연한 접근법을 제시했다. 그는 “비핵화 첫 단계로 완벽하고 구체적인 신고부터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CVC 실현 과정에서 주요 내용을 제시하는 ‘폭넓은 신고’로 시작해 진전 상황에 따라 대상 목록을 제시하는 ‘구체적 신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제안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어느 선까지 수용할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포괄적 신고로 핵협상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면 북한의 핵개발 능력을 가속화한다는 우려가 높다.
미국의 상응 조치도 협상의 주요한 동력에 해당한다. 돌턴 소장은 행정부 내 기류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CVC 실현 과정에서 한미 정부는 대북 제재 완화 및 경제지원, 대북투자 등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부분적 경제제재 완화는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물론 최종 결단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달린 만큼 이 같은 청사진이 얼마나 반영될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워싱턴 소식통은 “아직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협상 방향에 대한) 결정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가 끝나는 2020년까지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담은 것이 관건이기도 하다. 북한의 태도에 따라선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정책 방향을 180도 수정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기 때문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에 있어 사실상의 (비핵화 조치 이행)데드라인은 올해 말 또는 내년 초”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실질적 비핵화에 실패했다는 비난에 직면하면 ‘최선을 다했지만 북한이 우리를 속였다’며 최대의 대북 압박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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