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치권의 뿌리깊은 대북 협상 회의론 의식
北에는 제재완화 언급하며 ‘비핵화 검증’ 압박
“신뢰하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3일(현지시간) 미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확신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 문구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재임 1980~1989)이 소련과의 군축협상 과정에서 자주 인용해 유명해진 러시아 속담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그러면서 “그(김정은 위원장)가 이걸 할지 지켜봐야 하고,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북 제재는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지지했다”면서 “이 같은 제재를 완화하는 대가로 좋은 결과를 내자는 게 미국의 온전한 의도”라고 설명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이날 발언은 소련과의 군축 협상으로 냉전 종식과 평화 회복에 큰 기여를 했고, 공산권 붕괴를 이끌어낸 레이건 전 대통령이 자주 썼던 문구를 꺼냄으로써 미국 내에서 확산되고 있는 대북 협상 회의론을 불식시키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최근 발언은 미 정계의 깊은 대북 불신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펠로시 의장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문희상 국회의장 및 여야 5당 지도부와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의도는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남한의 비무장화”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코리 가드너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원장은 14일 워싱턴 토론회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북한이 구체적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회담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드 마키 동아태소위 민주당 간사는 “김씨 일가의 각본에 다시 당할 수 없다”며 자신은 2차 정상회담 결과에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에선 지난 25년간의 대북 협상 실패는 북한의 속임수 탓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로 인해 북한과 합의시 철저한 검증을 받아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날 마키 간사는 검증 조치가 미포함된 합의는 ‘환각’일뿐이라며, 강력한 제재를 통해 북한이 아픔을 느껴야만 미국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북한에는 신뢰를 바탕으로 개입정책을 계속하겠지만 비핵화 이행 확인에선 절대 양보가 없다는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음주 2차 실무회담을 앞두고 철저한 검증에 나설 것임을 예고하면서 북한이 이를 수용하게 되면 제재 완화를 들어줄 용의가 있다고 전한 것.
두 나라는 오는 27~28일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 및 플러스 알파(+α)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놓고 최종 접점 찾기를 모색한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회담 이후 260일만에 재회하게 된다.
한편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5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서기장을 처음 만났다. 두 정상은 1987년 12월 워싱턴 회담에서 중거리핵무기 폐기 협정에 서명했다. 특히 이들의 2번째 만남인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회담은 ‘실패했지만 성공한 회담’으로 불린다. 합의 도출에는 실패했지만 서로가 합의 가능한 수준을 확인, 이듬해 회담 성공의 발판을 놓았다는 것이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자문역을 맡았던 러시아 문학 문화이론가 수잰 매시로부터 레이캬비크 회담 직전에 이 러시아 속담을 처음 전해 들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베트남 정상회담이 레이캬비크 회담과 같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는 모습을 떠올려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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