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비욘드 영변’폐기-제재해제 ‘빅딜’ 준비 안된 듯
트럼프, ‘스모딜’보다는 ‘노딜’ 전략적으로 택한 듯
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28일 SNS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밝은 표정으로 작별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공개했다. (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SNS) 2019.2.28/뉴스1
북미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됐던 제2차 하노이 정상회담이 합의문 채택 없이 결렬됐다. 회담 종료 이후 북미는 비난전을 벌이지는 않지만 결렬 책임을 상대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 여겨지는 발언들은 내놓고 있다.
양측의 이견이 가장 큰 지점은 비핵화 범위와 제재 해제 수위이다.
비핵화 조치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1일 새벽 기자회견에서 “영변 지역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 시설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의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이다”고 밝혔다. 북한이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의 폐기를 제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일 기자회견에서 ‘영변 핵시설을 실제로 폐기하는 문제로 들어갔는가’란 질문에 “그렇다”고 밝혀 북미가 영변핵시설에 대해 동결과 불능화를 넘어 폐기 단계까지 논의를 진행한 것은 확실히 보인다.
쟁점은 플러스 알파(+α) 부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핵 폐기를 넘어 더 많은 것을 원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추가 우라늄 농축 시설이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긍정했다. 또 의심 지역 사찰을 요구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은 이에 더해 미사일, 탄두와 무기시스템, 핵목록 신고까지 거론했다.
리 외무상은 “미국 측은 영변지구 핵시설 폐기 조치 외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으며 따라서 미국이 우리의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밝혀 북한은 영변 핵 폐기를 마지노선으로 설정했고, 미국은 영변 이외 지역의 우라늄 농축시설의 신고와 폐기와 대량살상무기(WMD)까지 의제로 삼으려한 것으로 보인다.
영변 이외 지역의 우라늄 농축시설 규모와 숫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올리 하니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은 최소 한 곳이 더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제프리 루이스 제임스 마틴 비확산센터 동아시아 담당은 제3의, 제4의 핵시설이 있을 수 있다고 가능성을 제기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구체적으로 지역 명을 거론하며 강선 지역에서 북한이 대형 원심분리기 시설을 운영중이라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우라늄탄은 천연우라늄을 원심분리기에서 고속으로 회전시켜 농축해 만드는데, 은밀하게 제조가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북미는 상응조치에 대해서도 의견을 달리했다.
리 외무상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라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총 11건 가운데서 2016년부터 17년까지 채택된 5건”이라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제재를 전체적으로 해제해줄 것을 원했고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을 마친 후 필리핀 마닐라에 머물고 있는 폼페이오 장관도 “북한이 기본적으로 전면적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회담장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를 카드로 꺼내자 미국이 추가 조치를 거론했고 이에 북한이 전면적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인지 아니면 북한이 전면적 제재해제를 요구하다보니 미국이 WND 전체와 핵목록 신고까지 요구한 것인지 무엇이 먼저인지는 불분명하다.
분명한 것은 북한은 플러스 알파를, 미국은 제재해제를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제재 해제 요구를 언급하며 “우리는 그런 특정한 제의에 대해서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하노이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그(김정은 위원장)에게 더 많은 것을 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그렇게 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빅딜’ 대신에 ‘스몰딜’ 합의 가능성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지만 미국 측이 ‘스모딜’보다는 ‘노딜’이 낫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코언 청문회로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회담을 결렬시키는 것이 미국 내의 관심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로 집중시키는데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회담은 결렬됐지만 양측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했다는 점은 성과로 여겨진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1985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서기장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두 정상은 1987년 12월 워싱턴 회담에서 역사적인 중거리핵무기 폐기 협정에 서명할 수 있었다.
특히 이들의 2번째 만남인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회담은 ‘실패했지만 성공한 회담’으로 불린다. 당장 합의 도출에는 실패했지만 서로가 합의 가능한 수준을 확인, 이듬해 회담 성공의 발판을 놓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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