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북한은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일본인 13명을 납치한 사실을 인정하고, 그중 5명을 일본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납북자 가족 실태조사’에 의하면 휴전협정 이후 납북되어 현재 생사조차 알 수 없는 한국인이 5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현재 한국 정부는 이들의 생사와 소재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지, 원할 경우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가은 동아대 국제학부 졸업(13학번·아산서원 14기)
A. 북한은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한국 국민들을 납치해서 강제 억류했습니다. 이들을 전후납북자라고 부릅니다. 1955년 대성호를 시작으로 3835명의 한국 국민이 납치됐습니다. 이들 중에서 3310명(86.5%)은 6개월~1년 이내에 귀환했고, 9명은 2000년 이후 탈북·귀환했습니다. 전후납북자들은 어부 466명, 군인·해경 30명, 대한항공 여객기 승객과 승무원 11명, 민간인 18명 등입니다. 북한은 1977~78년 사이에 홍도와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고등학생 5명을 납치해서 대남간첩 교관으로 활용했습니다. 2000년 이후에는 중국에서 탈북자 지원활동을 하던 종교인들을 납치해서 강제 억류했습니다. 2017년 12월을 기준으로 북한에 강제 억류된 한국국민은 516명으로 추정됩니다.
북한이 한국 국민들을 납치한 사건들은 유엔에서 금지하는 인권침해입니다. 국제사회는 강제실종선언과 강제실종보호협약을 통해서 특정 국가의 정부가 행하는 개인에 대한 납치를 인간의 존엄성 침해행위로 보고 금지합니다. 납치로 인한 강제실종은 실종자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가족들에게 큰 고통을 주는 반인륜적 범죄입니다. 2014년 발표한 유엔 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는 ‘외국인 납치 및 강제실종’이라는 제목 아래 전후납북자 문제를 다뤘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승인 하에 납치를 자행했고, 납치 과정에서 육·해군 및 정보 요원들을 동원했고, 일부 납북자들을 간첩 및 테러활동에 투입했다고 밝혔습니다.
6·25납북피해자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해 4월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서 전후납북자 송환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전후납북자들은 강제 억류된 후에 북한당국에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납북자들을 적대계층으로 분류해서 탄광·광산 지역이나 산간 지역 농장에 배치했습니다. 납북자들은 정치적 자유, 거주·이전·이동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를 빼앗기면서 직장과 거주지에서 일상적으로 감시당했습니다. 납북자 자녀들도 적대계층으로 규정되어 차별을 받았습니다. 납북자 자녀들은 군 입대를 제한받았고, 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웠고, 당 간부나 국가 공무원 임용과 입당에 제한을 받았습니다.
한국 정부는 자국민 보호라는 국가의 기본적 책무의 관점에서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추진사업은 납북자 실태 파악과 해결방안 마련을 위한 조사사업, 귀환납북자 재정착 지원과 납북자 가족 피해 보상, 납북자 생사확인·가족상봉, 전원 송환, 국제사회 및 민간단체와 협력 등입니다. 우선 전후납북자들의 납북·강제억류·인권침해 등의 실태를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수차례에 걸쳐 조사·연구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또 북한을 탈북해서 한국으로 귀환한 납북자들의 재정착과 납북자 가족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2007년 4월 2일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체결 이후 납북피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된 후 귀환 납북자들의 재정착을 지원하면서 납북자가족들에게 피해 위로 및 보상금으로 150억 원을 지출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남북회담에서 납북자 문제 해결을 지속적으로 북한에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납북자들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납북자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국정부는 납북자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가족상봉이라도 추진하기 위해서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납북자 가족들을 포함시켰습니다. 2006년 제7차 적십자회담에서는 전쟁 이후 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전후납북자를 의미)의 생사확인 문제를 협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 후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는 전후납북자 19가족이 상봉했고, 64명이 생사를 확인했습니다.
2015년 10월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0차 이산가족상봉’ 행사에서 북측 아들 정건목 씨(오른쪽)가 남측의 어머니 이복순 씨의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있다. 정 씨는 1972년대 서해상에서 조업 중 납북된 어부다. 동아일보DB. 물론 일부 상봉과 생사확인만으로 전후납북자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전원 송환까지는 할 일이 많습니다. 남북한 정상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선언을 통해서 “민족 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의했기 때문에 한국정부는 앞으로 열릴 적십자회담에서 납북자 문제 해결에 대한 북한의 호응을 촉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편으로는 남북회담에서 전후납북자 생사·주소확인, 가족상봉, 서신 교환을 추진하면서 전원 송환을 촉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엔 등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민간단체와 협력을 통해 납북자 문제에 대한 북한의 태도변화를 촉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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