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초반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친형(고 이재선씨)을 만나 약을 건넸다. 하지만 그 약은 조증약이 아닌 수면제 계통의 약이었다”
4일 이 지사의 ‘친형에 대한 강제진단 직권남용’ 혐의 재판에는 2002년 당시 용인효자병원의 가정의학과 전문의 백모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그의 진술은 재선씨의 정신질환이 언제였는지를 특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이날 백씨는 구체적인 증거를 묻는 검찰과 변호인의 증인신문에 애매모호한 답변을 하면서 양측 모두는 물론 재판부까지 답답하게 만들었다.
이 지사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제16차 공판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수원지법 성남지원 제3호 법정에서 시작돼 오후 8시30분께 마무리됐다.
백씨는 1990년 후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 재선씨와 시민단체인 성남시민운동본부에서 함께 활동하고, 2002년에는 부부동반 저녁식사도 하는 등 가까운 사이여서 해당 사건의 주요 인물로 판단한 검찰이 채택한 증인이다.
하지만 백씨는 이날 재판에서 검찰과 변호인 측의 신문에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해 재판 진행을 지지부진하게 만들었다.
백씨는 “이 지사를 비롯해 일부 성남시민모임 회원들이 재선씨에 대해 ‘화를 많이 내고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취지로 나에게 말을 했고, 이때 나에게 ‘재선씨를 자중시켜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며 “재선씨를 만나기 위해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하지만 전화통화에서 재선씨가 ‘잠을 잘 못 잔다’고 말해 수면제 계통의 약을 건네줬고, 이 지사 역시 정황상으로 보면 나에게 친형에게 약을 전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같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검찰 측은 “수사기관에서 조사 당시 ‘이 지사로부터 부탁을 받아 당시 재선씨에게 약을 건넸다’고 진술했는데 기억나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백씨는 “정황상 그렇지만 구체적으로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검찰은 “재선씨에 대한 대면진단 없이 처방전을 꾸며서 약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용인효자병원 전산기록상에 재선씨가 내원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라며 “지금 거짓말 하는 것이냐”고 추궁했다.
변호인 측도 반대신문을 펼쳤지만 백씨로부터 유리한 증언을 뽑아내지는 못했다.
백씨가 조증약이 아닌 수면제 계통의 약을 줬다는 증언을 함에 따라 ‘교통사고 이전에 재선씨의 정신질환을 의심할 수 없었다’는 검찰의 공소논리를 뒤집지 못한 것이다.
변호인 측은 “화를 낸다는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수면제 계통의 약을 전달하나. 이는 혹시 조증약이 아니냐”며 “화를 덜 내게 해주기 위한 수단으로 수면제 계통의 약을 줬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백씨는 이날 변호인 측에서 제시한 핵심 증거에 대해서도 모두 ‘모르쇠’로 일관했다.
변호인 측이 법정에서 공개한 2012년 당시 백씨와 재선씨와의 전화통화 음성파일에는 재선씨가 “옛날에 부부끼리 밥을 먹고 나올 때 백 선생님이 뭔가 약을 줬는데 이게 뭐냐”라고 백씨에게 물었고 “조증약이다. 글이 이렇게 너무 날아다니고 그랬기 때문에 (줬다)”라고 백씨가 답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2012년 재선씨가 어머니에 대한 존속폭행 혐의 건으로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던 중 ‘2002년 백씨가 내게 준 약은 조증약이다’라고 진술한 공소장 부분도 공개됐다.
하지만 백씨는 이 부분에 대해 모두 ‘모른다’고 답했다.
검찰과 변호인 뿐만 아니라 재판부도 이날 백씨의 증언이 어딘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음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과거 재선씨가 백씨에게 준 약이 조증약이라고 알고 항의를 많이 했다는데 백씨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어떤 객관적인 자료도 재선씨에게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이 이상하다”고 의문을 표시했다.
이어 “수면제 계통의 약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누구의 부탁으로 정확히 밝히지 못하는 점을 고려하면 백씨 스스로가 기억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진술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지사에 대한 17차 공판은 8일 오전 10시 수원지법 성남지원 제3호 법정에서 열린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