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탈북민 90% “남북 통일 원해”…이유 들어보니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5일 14시 00분



Q. 휴대전화의 보급으로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 북한 청년의 상당수가 남북의 경제적, 사회적 격차를 인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들의 민족의식, 통일의식은 북한의 기성세대와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는지 궁금합니다.

-박기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15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A. 개인적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통일을 원치 않아서가 아닙니다. 이 노래 때문에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통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기회 자체를 빼앗긴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제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만 해도 통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야 할’ 당위의 문제였으니까요.

요즘의 젊은 세대는 다릅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중장년층에 비해 현저히 낮습니다. 2017년 통일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통일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20대는 38.9%가 긍정적으로 답했을 뿐입니다. 참고로 50대는 65.3%, 60대 이상은 71.0%가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한 응답도 흥미롭습니다. 20대의 경우 남북한이 같은 민족이므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0.5%에 불과했습니다(50대는 36.2%, 60대 이상은 47.3%). 반면, 민족이 같다고 해서 반드시 통일을 할 필요는 없다는 응답이 47.2%나 되었습니다(50대는 29.1%, 60대 이상은 26.6%). 적어도 청년층에게 민족담론은 통일을 설득하는 프레임으로서의 역할을 잃어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기성세대는 청년층의 통일의식 부재를 개탄하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이제야 비로소 통일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통일은 대한민국의 명운을 바꿀 엄청난 사건입니다. 막대한 이익이 창출되리라는 기대도 있지만, 천문학적 비용이 투여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합니다. 통일이 단순히 손익의 대차대조표로 계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 할지라도, 통일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통일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북한주민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실시할 수 없기에 최근 탈북한 북한이탈주민의 생각을 통해 북한주민의 통일 의식을 엿볼 수밖에 없습니다. 2018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최근 2년 내 탈북한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90.8%나 됩니다. 20대는 90.9%가, 50대는 무려 100.0%가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통일에 대한 남북의 상당한 온도차를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북한주민들은 왜 그렇게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연령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나이가 적을수록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응답은 줄어든 반면 경제적 필요에 의해 통일을 해야 한다는 응답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북한에서도 청년층을 중심으로 실용적 관점의 통일 인식이 퍼져가고 있음을 조심스레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는 ‘신세대’가 있다면 북한에는 ‘새 세대’가 있습니다. ‘새 세대’란 북한에서 청소년, 청년 학생을 통칭하는 보통명사입니다. 오늘날 북한의 새 세대는 김일성 주석의 사망(1994년)을 전후로 태어나 화폐개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및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집권 등 굵직한 사건들을 직접 겪은 세대입니다. 특히 북한의 시장화가 본격화된 2000년대 이후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자본주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은 세대이기도 합니다. ‘시장’이란 ‘소비’를 만들고 ‘소비’는 ‘개인’을 탄생시킵니다. 청년 세대들은 시장에서의 소비활동을 통해 조금씩 개인의 욕망에 눈을 뜨게 됩니다.

또한 북한의 새 세대는 휴대전화 등 디지털 매체의 보급으로 외부 정보에도 비교적 밝은 편입니다. 이들은 몰래 남한 드라마나 노래를 들으며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가기도 합니다. 이는 북한의 체제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소련을 붕괴시킨 요인 중 하나로 새로운 통신 기술 발달에 따른 MTV의 전파를 꼽는 이도 있으니까요. MTV가 전달하는 서양의 록음악, 그리고 그 음악에 담긴 저항의 메시지가 정치나 군사로는 뚫지 못한 철의 장막을 무너뜨렸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7월 평양에서 한 시민이 휴대전화를 보며 거리를 지나고 있는 모습. 불과 수년 전까지 북한에서 휴대전화는 소수 특권 부유층 전용이었지만 최근엔 보급이 크게 늘었다. 동아일보DB.
지난해 7월 평양에서 한 시민이 휴대전화를 보며 거리를 지나고 있는 모습. 불과 수년 전까지 북한에서 휴대전화는 소수 특권 부유층 전용이었지만 최근엔 보급이 크게 늘었다. 동아일보DB.

북한은 새 세대의 이념 단속이 체제수호에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조선소년단’,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등의 청년조직을 운영해 유년기부터 강도 높은 사상교육을 시킵니다. 하지만 외부 문물과 사상의 유입은 더 이상 북한 당국이 검열을 통해 통제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조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북한에 보급된 휴대전화는 대략 600만 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주민 4명 당 1명꼴로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비록 북한에서는 인터넷망이 개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클릭 한 번으로 외부 정보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는 없지만, 불법적으로 구한 외부의 문화콘텐츠를 휴대전화에 저장해놓고 몰래 꺼내보거나 서로 공유하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의 새 세대들이 북한 체제를 전복할 만큼의 급진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이 성장할 당시의 시대상황은 이전 세대와 구분되는 것만은 분명해보입니다. 바라기는, 북한의 청년 세대들이 외부 문화를 접하는 과정에서 사고의 지평이 조금씩 확장되고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그러다 보면 남한의 신세대와 북한의 새 세대가 하루 빨리 자유롭게 왕래하며 소통할 수 있는 그 날도 곧 오지 않을까요?

김수경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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