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하나 안 하나 똑같아" vs "국회 역할은 수행해야"
'공보관실 운영비' 횡령 의혹 놓고 증인 채택 논의에 고성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9일 진행한 문형래 헌법재판관 청문회에서 여야는 ‘청문회 무용론’과 ‘후보자의 횡령 의혹’ 관련 문제 등으로 거센 공방을 펼쳤다.
법사위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청문회를 위한 전체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김연철·박영선 장관을 임명한 것을 두고 자유한국당의 반발이 잇따르면서 1시간여 동안 공방만 오갔다.
한국당은 국회가 청문회를 하고, 야권에서 부적격 의견을 담아 청문보고서를 채택하거나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아도 어차피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것이라며 청문회를 열 필요성이 없어보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갑윤 한국당 의원은 “오늘과 내일 인사청문회 일정이 잡혀있는데, 청문회를 하나 안 하나 똑같다”고 말했다. 같은 당 이은재 의원은 “문형배·이미선 두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실시 계획 채택 시 저희 한국당은 인사청문회 무용론을 지적, 예고했다. 이 정권이 독선과 오만 불통의 정권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고 주장했다.
주광덕 의원은 “대통령으로부터 ‘국회 청문회 과정과 경위, 결과를 지켜보고 그것을 고려해서 임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답변을 받지 않고는 청문회가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장제원 의원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문 대통령을 비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적어도 염치가 있었다. 잘못된 인사에 대해 낙마시키고, 잘못됐을 땐 경질하고 국민에 솔직하게 고백할 용기 있는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신을 잇는다면서 한 마디 말씀이 없다. 이게 도리인가. 지금 이 상황에서 청문회를 더 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 했다.
장 의원은 문형배 후보자를 향해 “재판관님 아주 축하드린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반면 민주당은 지적이 나올 수 있으나 청문회는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야당이 반대하는데 대통령이 장관을 임명했다면 기분 나쁠 것이고 문제제기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헌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대통령이 내각 구성에 책임을 진다는 게 기본 원칙”이라며 “청문회 제도는 국회 동의권을 확보하는 게 아니고 국민에게 그 인사와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자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새누리당부터 현재 한국당까지 의원들이 국회를 파행시킨 게 총 16회다. 국정감사 보이콧, 본회의 보이콧, 상임위 보이콧 등 그때 그때 다 명분이 있을 것”이라며 “주장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얼마든지 비판도 하고 반대도 해야 한다. 하지만 국회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나서 주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후 2시 넘어 청문회가 시작되자 문 후보자가 진보성향 법관들의 학술단체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점과 가정법원 법원장 재직 시 횡령을 했다는 의혹이 부각됐다. 여야는 문 후보자의 정치적 편향성과 횡령 의혹 관련 증인 채택 문제로 또 한 차례 공방을 벌였다.
김도읍 한국당 의원은 문 후보자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산가정법원 법원장 재직 당시 공보관실 운영비 명목으로 현금 950만원을 지급 받았다고 밝히며 횡령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문 후보자가 증빙자료를 제출하지 못한다면 횡령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문 후보자는 이에 “현금성 경비는 현금수령자의 지급명세서로 증빙하게 돼있고 지침에 따라 썼다. 가정법원의 예산은 늘 모자라서 제 월급을 털어서 사비로 100만원을 낸 적도 있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한국당 소속 여상규 법사위원장은 “문 후보자의 진술 내용과 배치되는 직원 진술이 확인된 모양”이라며 증인 채택을 시도했다.
그러자 여당에서 증인·참고인 채택은 간사 간 합의를 거쳐야한다며 반박했다. 이 과정에서, 항의하는 표창원 의원과 여 위원장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여 위원장은 “이런 내용까지 일일이 간사 간 협의를 거친다는 것은 시간 낭비”라며 “서로 배치되는 내용이 나오면 그 내용을 확인하는 권한은 제 회의 진행 권한에 포함돼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문 후보자의 정치적 편향성 검증 질의를 쏟아냈다. 문 후보자는 “우리법연구회는 학술 연구단체”라며 반박했다.
문 후보자와 사법연수원 동기라고 소개한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우리법연구회에서 회장직까지 맡게 된 배경 등을 물으며 해명할 기회를 줬다.
문 후보자는 “우리법연구회가 학술연구단체라고 생각해 들어갔다. 1996년 가입했을 땐 이념적으로 편향됐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며 “회장은 2009년에 했는데 서울에는 회장 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지방에 있는 저에게 여러 차례 요청해 부득불 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야권에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사태와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인 사건에 대한 입장도 물었다.
문 후보자는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1차적으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권한이 집중된 것이 그런 사태를 불러일으켰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사형제와 낙태죄 폐지에 대해 묻자 문 후보자는 “입법적으론 사형제가 폐지됐으면 좋겠다”라며 “낙태죄도 산모의 자기결정권을 예외적으로 허용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나타냈고, 군대 내 포괄적 차별 금지법 제정에 대해선 “군대 내 동성애 처벌은 합헌이라는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현재 쟁점이 해소되지 않은 것 같다.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답했다.
그는 종교인과세법 헌법소원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돼야 하지만, 종교 활동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며 “관련 사건이 헌재에 계류 중인 것으로 안다. 더 이상 말씀드리는 건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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