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환적 의심 한국 선박, 혐의 확정되면 어떤 처벌 받게되나?[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0일 14시 00분



Q. 한국 국적의 선박이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석유를 불법 환적한 혐의가 있다는 보도가 최근 있었습니다. 혐의가 확정될 경우 어떤 방식으로 제재가 이뤄지는지, 문재인 정부의 중재자론과 다가올 한미 정상회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 이전에도 러시아, 중국 등에서 꾸준하게 불법 환적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불법 환적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위반 여부를 감시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남성현 한국해양대 해양플랜트운영학과 14학번(아산서원 14기)

A. 북한의 정제유 불법 환적 행위는 북한 경제의 숨통을 어느 정도 틔워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북한의 불법 행위는 동해, 동중국해, 그리고 남중국해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큽니다. 이를 대변하듯 해당 해역에서는 미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호주, 영국, 캐나다의 초계함과 초계기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3월 21일 미국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 국적 선박인 루니스호를 제재위반 관여 의심 명단에 올렸습니다. 이 명단은 미 정부의 독자제재 대상이 등재되어 있는 특별제재대상(Specially Designated Nationals) 명단과는 달리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미 재무부의 주 관찰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루니스호와 이 선박을 소유한 회사는 향후 불이익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미국의 불법 환적 의심 명단에 오른 한국 선박 ‘루니스호’. 사진출처 베슬파인더
미국의 불법 환적 의심 명단에 오른 한국 선박 ‘루니스호’. 사진출처 베슬파인더

일단 루니스호가 북한선박에 석유제품을 불법 환적 했는지는 관계 당국이 조사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처벌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만약 루니스호의 혐의가 확정된다면 국내법인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처벌될 것으로 보입니다.

유엔안보리 결의안 2397호는 북한의 원유를 제외한 정제유 수입량을 연 50만 배럴로 제한합니다. 하지만 북한의 불법적인 석유수입 행위를 막는 조치는 전적으로 각 유엔회원국의 재량에 맡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루니스호가 실제로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면 이에 대한 조사와 처벌은 당사국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이 맡아야 합니다.

이는 북한의 불법 환적에 간여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중국과 러시아 국적의 선박과 기업들의 경우에도 동일합니다. 불법 혐의 선박과 기업들을 당사국인 중국이나 러시아가 직접 조사하며 필요한 경우 처벌해야 합니다. 유엔안보리 제재 결의안 준수 여부는 각 회원국의 자발적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는 북한에 대한 추가 압박을 반대하기 때문에 자국 기업의 불법 행위를 적극적으로 처벌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종종 보입니다. 그러나 2016년 북한에 핵 개발 관련 전략물자를 수출한 랴오닝 훙샹 그룹의 경우는 미 정부의 제재 외에도 중국 정부가 먼저 조사하고 처벌한 전례가 있어 중국과 러시아도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을 비교적 준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회원국의 행동을 강제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배경에는 미국이 있습니다. 미국은 자국의 관할권이 미치지 않는 역외에서 일어나는 제재위반 행위를 처벌하는 2차 제재, 즉 ‘세컨더리 보이콧’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간접 제재로서 대부분 제재위반자의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조치입니다. 여기에는 미국 금융 시스템에서의 퇴출도 포함되는데 미 달러화가 세계경제의 기축통화임을 감안하면 미국 시장과 금융시스템에 대한 접근 차단은 제재를 받는 기업의 경제적 사망 선고로 봐도 무방합니다.

따라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한 기업이나 개인은 자국의 처벌뿐만 아니라 미국의 2차 제재 조치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미 재무부 OFAC은 지난달 말 한국 선박을 제재 위반 관여 의심 명단에 올릴 때 북한과의 불법 환적과 중계 무역에 간여한 것으로 드러난 2개의 중국 기업을 특별제재대상 리스트에 올렸습니다. 해당 기업에 대한 중국 당국의 조사 여부를 떠나 미 정부가 독자적으로 제재한 것입니다. 이 기업들에 대한 제재는 2017년 9월 미 행정부가 고시한 행정명령(Executive Order) 1만3810호를 따릅니다.

행정명령 1만3810호는 일단 북한국적, 또는 북한인이 지분을 소유한 선박과 불법 환적을 한 선박은 6개월간 미국 항구에 정박할 수 없다고 명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루니스호에 대한 의심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루니스호에 적용될 수 있는 제재입니다.

지난해 6월 7일 파나마 선적 뉴리젠트호와 북한 유조선 금운산3호의 불법 환적 모습. 두 선박은 최소 5개의 호스를 연결해 80분간 석유 제품을 환적했다고 미국 국무부가 밝혔다.
지난해 6월 7일 파나마 선적 뉴리젠트호와 북한 유조선 금운산3호의 불법 환적 모습. 두 선박은 최소 5개의 호스를 연결해 80분간 석유 제품을 환적했다고 미국 국무부가 밝혔다.

또한 13810호에 근거해 미 정부는 북한의 운송산업에 기여한 기업 또는 개인 행위자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미 정부가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가장 최근에 제재를 당한 두 개의 중국 기업은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미 정부의 민사상 처벌을 받게 됩니다. 만약 제재대상이 결제한 무역대금을 북한이 소유한 은행계좌에 송금했을 경우 이를 중계한 금융기관 또한 미 정부의 처벌을 받을 수 있어 향후 제재대상은 늘어날 여지가 많습니다.

이번 주에 있을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미 재무부가 비록 제재를 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국적 선박을 제재 위반 의심 명단에 올린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일단 지난해 말부터 미 정부는 현 정부가 추진 중인 남북경협 사업의 제재 위반 가능성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강한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 간의 비핵화 합의 도출이 실패하면서 미 행정부는 북한을 더욱 압박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미 행정부의 강경한 자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설득해 남북경협을 본격화하고 교착상태의 북미 간 외교를 활성화하려는 문 대통령의 전략에 차질을 주게 될 것입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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