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만개한 벚꽃은 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미 정상회담) 결과는 좋았으면 좋겠다. 준비 단단히 많이 하고 간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오후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하기 전 경기 성남 서울공항으로 배웅 나온 로버트 랩슨 주한 미국 부대사에게 이같이 말했다. 11일(현지 시간) 2시간 남짓 이뤄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을 앞두고 막중한 부담과 함께 기대를 내비친 것. 청와대는 이번 원포인트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기 수확’ 구상을 설명하고 비핵화 대화 재개의 불씨를 지피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북-미는 이날 한껏 날 선 메시지를 날리며 팽팽한 긴장감을 이어갔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만나 내놓을 비핵화 메시지에 따라 올 상반기 한반도 정세가 가늠될 것으로 보인다.
○ ‘빅딜’ 트럼프에게 ‘조기 수확’ 통할까
미국은 문 대통령의 방미 출국일에도 최대 압박 기조를 재확인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9일(현지 시간) 미 상원 청문회에서 “북한과의 협상을 지속하는 동안에도 최대 경제적 압박은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게 썼던 ‘폭군(tyrant)’ 표현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도 적용되는 것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는 “물론이다”라고 답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9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하고 “긴장된 정세에 대처하여 간부들이 고도의 책임성과 창발성(창의성), 자력갱생, 간고분투(고난을 이기며 싸움)의 혁명 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당의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철저히 관철하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전략적 노선’은 지난해 4월 당 전원회의에서 결정한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을 뜻하는 것으로 결국 제재 속 버티기를 강조한 셈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 모두 서로 결정적인 패는 숨긴 가운데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며 “김 위원장이 ‘새로운 길’에 대한 언급을 아끼고 있는 상황에서 공이 다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넘어간 상황”이라고 말했다. ○ 한미 정상만의 시간은 거의 없을 듯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톱다운’식 북핵 외교의 불씨 살리기에 나설 계획이다. 하노이 결렬 후 ‘굿 이너프 딜(충분히 좋은 합의)’과 ‘조기 수확론’을 꺼낸 문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빅딜 기조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단독 정상회담을 김정숙 여사와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함께하는 부부 회담 형식으로 가질 예정이다. 김 여사는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방한 당시 멜라니아 여사에게 “손주가 있는데 전쟁이 날까 잠이 안 온다”고 말했고 트럼프가 공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부부 회담으로 단독회담을 대체하면서 한미 정상만의 시간이 없어 북핵 해법에 대한 내밀한 대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통역을 고려했을 때 부인을 두고 빅딜과 ‘굿 이너프 딜’ 사이에서 접점을 찾기에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빅딜’ 기조를 바꾸는 메시지를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앞서 청와대와 외교안보 책임자들이 워싱턴을 찾아 사전 조율한 만큼 미국의 긍정적 비핵화 입장은 나올 것”이라면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앞선 압박 정책을 변경한다기보다는 ‘조기 수확’ 등 문 대통령의 비핵화 플랜에 대해 일반론 수준의 지지 의사를 밝힐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날 김 위원장의 ‘자력갱생’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진전된 메시지를 받아온다 하더라도 김 위원장을 조속히 대화 테이블에 앉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당분간 버티기로 나서면서 상황을 봐 위성 발사와 같은 ‘충격요법’을 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대북 전문가는 “한국 정부의 비핵화 중재 역할이 갈수록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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