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정연설이 향후 제재해제 중심의 상응조치 요구로부터 탈피할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전략연)은 15일 통일부 출입기자단 기자간담회에서 배포한 ‘김정은 시정연설 특징 분석’ 자료에서 김 위원장이 “쌍방이 서로의 일방적인 요구조건들을 내려놓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부합되는 건설적인 해법” 강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며, 협상안 조정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 2일회의에 참석해 시정연설에서 “조미(북미)사이에 뿌리깊은 적대감이 존재하고 있는 조건에서 6·12조미공동성명을 이행해 나가자면 쌍방이 서로의 일방적인 요구 조건들을 내려놓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부합되는 건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기동 전략연 부원장은 “금년 말 이전에 북미 협상이 진행되거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길 북한은 아마 기대할 것”이라며 “(북한 입장에서) 최악의 경우가 연말이고, 그 이전까지 최악의 마지노선을 그어서 그 전에 추동되길 바라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실적으로 제재완화라는 상응조치로 밀고 갔을 때 미국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은 북한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며 “협상 모멘텀을 이어가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상응조치를 내세움으로써 북미 협상 모멘텀을 살려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것은 종전선언이 될 수 있고, 군사적 위협해소나 체재안전 보장과 관련된 상응조치 쪽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며 “지난번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됐을 때 리용호(북한 외무상)가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이 난처한 입장을 고려해 군사부분에 대해서 상응조치 제안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있다. 이제는 군사부분을 제의할 수 있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14일 “조선이 제재해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다른 행동조치로 저들의 적대시정책 철회 의지와 관계개선 의지, 비핵화 의지를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전략연은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에 대해 중재자·촉진자로서의 남한 역할에 대한 불만 표시 및 민족적 당사자로서의 역할 수행을 촉구하는 차원으로도 분석했다. 다만 미국이 아닌 북한의 편에 서달라는 ‘불만성 메시지’로 보면서도 대북 특사파견이나 남북 정상회담에는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남조선당국은 추세를 봐가며 좌고우면하고 분주다사한 행각을 재촉하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기 북한연구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직접 비난이 없다”며 “(시정연설에) 남북 정상회담이나 북미 정상회담의 효용성 언급이 있고, 향후 최소 한 번 정도 개최할 필요가 있다는 기대감이 담겨있다”고 분석했다.
이 부원장은 “당사자 입장에서 당사자적 관점을 가지고 중재자·촉진자에 임하라, 이런 것을 촉구하는 의미로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고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그렇게 본다면 북한의 표현은 ‘중재자 역할을 강화하라’는 쪽으로, 역설적인 어법을 활용한 ‘중재자 역할 촉구’로도 해석을 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스몰 딜’과 우리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굿 이너프 딜’(충분히 좋은 거래) 등에 대한 발언도 있었다.
최용환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미국 입장이 강경해서 (지금) ‘북한이 먼저 움직여라’, ‘한꺼번에 모든 것을 타결하자’, ‘그 전에 제재 해제를 할 수 없다’고 해서 문제이긴 한 데, 전체 로드맵 합의, 거기에 대한 신뢰, 초기단계에서 신뢰구축을 하기 위한 중요한 진전이 만들어진다면 중재될 수 있지 않을까(싶다)”며 “이른바 우리 정부가 만든 ‘굿 이너프 딜’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임명된 북한 김재룡 신임 내각총리에 대한 분석도 이어졌다.
김인태 책임연구위원은 “올해 정치권력 구조 가운데 가장 특징적 문제는, 김 총리 같은 젊은 경제관료 중심으로 권력구조가 변화된 측면을 볼 수 있다”며 “(김 총리는) 자강도당 위원장을 하다가 갑자기 발탁된 인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부원장은 김 총리의 임명에 대해 “자강도는 국가경제의 축소판”이라며 “국가경제를 책임지는 내각총리에 앉히는 것은 일련의 과정에서, 시험에서 합격한 인사조치로 볼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봉주 총리가 그만뒀지만 당과 국가 부분에서 경제를 총괄하는 사령탑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박봉주(당 중앙위 부위원장)의 지시를 받아서 내각에서 경제를 담당할 수 있도록 박봉주와 관계라든가, 연령 등을 고려해서 한 인사조치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북러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관측도 제기됐다. 장세호 부연구위원은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4월 말, 5월 초께 극동 주요도시 중 한 군데에서 (북러 정상회담이) 진행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며 “모스크바를 비롯한 다양한 카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장 부연구위원은 “의제는 2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며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양국 입장을 조율하고 공감하는 측면, 그리고 작년이 북러 수교 70년 되는 해였는데 우호선린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가 두 번째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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