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외연 넓히며 美 압박…北 내부 우려 불식 목적도

  • 뉴시스
  • 입력 2019년 4월 24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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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회담 결렬 이후 첫 행선지 '우군' 러시아
중·러 활용 '새로운 길' 현실화 가능성 강조
"미국에 '새로운 길'이 있다는 것 보여주는 것"
"비핵화 목적 북·중·러 연대 말릴 명분 없어"
'비핵화 결단' 주변국 지지, 내부 권위 강화 활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첫 번째 해외 순방지로 러시아를 택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외교 다변화를 통한 외연 확대와 대미 압박, 대내적으로는 자신의 정세전환 행보에 대한 지지를 과시함으로써 우려와 의구심을 불식시키려는 포석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은 24일 오전 10시40분(현지시간 ·한국시간 오전 9시40분)께 자신의 전용열차를 타고 두만강 북러 국경을 넘었다. 그는 하산역에서 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또다시 전용열차를 타고 이동해 이날 오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8년 만의 북러 정상회담은 오는 25일 루스키섬의 극동연방대에서 열릴 예정이다. 양국 간 쟁점 현안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것은 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만남이 ‘비핵화 협상’으로 대표되는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전략적 판단에 따라 비핵화를 약속하고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2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은 매번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찾았다.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고도 시 주석을 찾아갔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을 전후해 협상 전략을 짜는 동시에 ‘북한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부각하며 미국을 압박하는 효과까지 노린 움직임이었다.

이번 러시아 방문도 이러한 전략적 판단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이행에 동참하고 있으나, 매번 대북제재 결의 채택 때마다 마지막까지 북한의 입장을 최대한 대변해왔다. 특히 2016년 3월 결의 2270호를 시작으로 민생 분야에 대한 제재까지 이루어지자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결의 2270호 채택 당시 초안의 재검토를 요구하며 표결 연기를 요청하기도 했다. 결의 2270호의 ‘북한 민간 항공기의 해외 급유는 허용한다’는 예외 규정은 러시아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중국의 지지가 협상 국면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주고는 있지만 미중 관계에 따른 한계가 있다”며 “이번 러시아 방문은 지지 배경을 확대함으로서 운신의 폭을 넓히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곧바로 미국에 대한 압박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중국과 러시아 모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국제사회 여론전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경우에는 소련 연방이 해체될 때 우크라이나 등의 비핵화를 이끈 경험도 있다.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이 대북제재 일변도로 협상에 나설 경우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될 수도 있다고 천명했다. 이후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회의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까지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며 당장 노선을 바꾸지는 않을 거라는 입장을 내비쳤으나, 이는 미국이 올해 말까지 용단을 내리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통첩으로도 읽을 수 있다.

홍 실장은 “(북러 정상회담은)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이 틀어질 경우 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며 “만약 북한이 미국이 아닌 중국, 러시아와 손을 잡는다고 해도 비핵화를 하기 위해서라면 국제사회가 말릴 명분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도 긴장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을 의무적 통과지점으로 만든 현재의 협상 구도는 미국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게 만들고, 이는 북미 협상 교착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문이 대내적으로 갖는 의미도 크다는 평가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핵-경제 병진노선을 종결하고 경제건설총력노선을 새로운 전략적 노선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제재 완화’라는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데다가 지난 2월 하노이에서의 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결렬됐다. 내부적으로 그의 권위에 흠집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홍 실장은 “김 위원장이 비핵화 결단 이후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내부적으로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가운데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와의 정상 외교를 통해 자신의 정세 전환 행보가 대외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권위를 세우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효과도 노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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