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새로운 노무현으로” 봉하마을에 2만여명 노란색 물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4일 03시 00분


[노무현 前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여야4당 대표 등 정관계 인사 집결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 참석자들이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뜻을 담아 흰나비를 날려 보내고 있다(오른쪽 사진). 추도식을 찾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이날 권양숙 여사를 만나 자신이 직접 그린 노 전 대통령 초상화를 건네며 위로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모든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하신 분을 그렸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목소리를 용기 있게 내는 강력한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노무현재단 제공·김해=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 참석자들이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뜻을 담아 흰나비를 날려 보내고 있다(오른쪽 사진). 추도식을 찾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이날 권양숙 여사를 만나 자신이 직접 그린 노 전 대통령 초상화를 건네며 위로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모든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하신 분을 그렸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목소리를 용기 있게 내는 강력한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노무현재단 제공·김해=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 추도식이 열린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은 하루 종일 노란색 물결이었다.

추도식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시작됐지만 봉하로 향하는 발걸음은 오전 7시경부터 이어졌다. 점심 무렵 봉하마을 입구 도로는 추모객들이 탄 버스와 승용차로 꽉 막혔다. 3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 속에 많은 추모객들은 차에서 내려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색 모자를 쓰고 3km 가까이 걸어서 이동했다. 일반 추모객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 조정식 정책위의장, 박주민 최고위원 등 여권 인사들도 추모 인파와 함께 걸었다.

추도식에는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집결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노건호 씨는 이날 추도식에 참석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한 김정숙 여사와 식장 맨 앞줄에 함께 앉아 고인을 추모했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민주당 이해찬, 바른미래당 손학규, 민주평화당 정동영, 정의당 이정미 대표 등 여야 4당 대표들도 추도식장을 찾았다. ‘민생투쟁 대장정’으로 강원도를 방문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조경태 최고위원을 단장으로 하는 추모단을 보냈다. 일부 추모객들은 한국당 추모단을 향해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날 추도식에 참석한 현역 의원은 민주당 84명을 포함해 1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낙연 국무총리,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등 당정청 고위인사들도 대부분 자리를 지켰다.

건호 씨는 유족 인사말에서 “‘깨어있는 시민’ 그리고 그들의 ‘조직된 힘’에 대한 믿음은 고인께서 정치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신조였다”며 “한국은 이제 아시아 최고의 모범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첫 비서실장을 지낸 문 의장은 편지글 형식의 추도사에서 “노무현 대통령님!”이라고 외친 뒤 “지난 10년 세월 단 하루도 떨칠 수 없었던 이 그리움을, 이 죄송함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이건만, 정치는 길을 잃어가고 있다”며 최근 국회 파행 사태에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추도사 말미에 “대통령님, 보고 싶습니다. 존경했습니다”라는 대목에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대변인을 지낸 이 총리는 “노 전 대통령은 저희가 엄두 내지 못했던 목표에 도전하셨고, 저희가 겪어보지 못했던 좌절을 감당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정책은 약한 사람들의 숙원을 반영했고, 사람들은 처음으로 대통령을 마치 연인이나 친구처럼 사랑했다”고 말했다. 김정숙 여사는 이 총리의 추도사에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기도 했다.

이번 추도식은 ‘새로운 노무현’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진행됐다. 노 전 대통령이 남긴 가치들이 ‘사회 통합’의 밑거름이 돼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모친상 중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대신해 연단에 오른 정영애 이사는 “10주기를 계기로 그분의 이름이 회한과 애도의 대상이 아닌 용기를 주는 이름, 새로운 희망과 도전의 대명사로 우리 안에 뿌리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날 추도식이 친노(친노무현) 친문(친문재인) 진영을 결집시키면서 사실상 여권의 총선 출정식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추도식은 밝은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이 생전 즐겨 불렀던 ‘상록수’를 부르자 추모객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고인의 생전 영상이 나올 때도 눈물보다는 아련한 미소를 짓는 추모객들이 더 많았다. 전남 함평에서 공수한 나비 1004마리를 하늘로 날려 보내자, 몇몇 나비들이 유족들에게 날아가기도 했다.

추도식에 앞서 권 여사는 부시 전 대통령과 문 의장, 이 총리, 이 대표, 노 비서실장,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등과 환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부시 전 대통령은 직접 그린 노 전 대통령 초상화를 유족에게 선물했다. 이에 권 여사는 “실물이 더 낫다”고 농담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봉하마을 방문자는 2만여 명(노무현재단 추산)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했던 2년 전(5만여 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행사장에 마련된 3000석의 의자는 일찌감치 채워졌고, 자리에 앉지 못한 시민들은 주변에서 까치발을 하고 추도식을 바라봤다. 온 가족이 함께 봉하마을을 방문한 이정훈 씨(48)는 “인간 노무현에 대한 애틋함을 여전히 갖고 산다. 10년 전 그날이 아직 생생하다”고 했다.

김해=박효목 tree624@donga.com / 유근형 기자
#봉하마을#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새로운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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