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매고 18일간 영·호남 등 전국 4080㎞ 민생대장정
탄핵 후 보수세력 결집 성과…대선주자 입지 한층 강화
합장 무시, 동성애 혐오 발언 등 공당 대표로서 패착도
내년 총선 위해선 중도층 외연 확장, 좌클릭 불가피
"보수결집·외연확장 생각 안 해…국민속으로 들어갔다"
"反민주의 길 갈 수 없어…필요하다면 장외투쟁 계속"
여야 4당이 밀어 붙인 패스트트랙을 반대해 장외로 나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8일 간의 민생투쟁 대장정을 마쳤다. 보수 세력을 결집시킨 성과와 함께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장을 도모해야 하는 과제를 동시에 안게 됐다.
황 대표는 문재인 정권의 좌파독재를 규탄하고 민생을 보듬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지난 7일 부산을 시작으로 영남과 충청, 호남, 강원, 경기, 서울 등 각 권역별로 쉴 틈 없이 순회하는 강행군을 소화했다. 전국을 무대로 한 총 4080㎞에 걸친 민생 대장정에서 황 대표는 시장 상인과 중소기업 근로자, 택시기사, 농·어민, 청년, 주부, 군인, 자영업자 등 다양한 계층을 접촉해 밑바닥 민심을 훑었다.
당 안팎에서는 ‘정치 신인’ 황교안의 생애 첫 장외투쟁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소득주도성장, 북핵, 탈원전 등 문재인 정권의 최대 약점인 경제 실정과 안보 위기를 집요하게 비판해 탄핵 정국과 6·13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흐트러진 보수 지지층을 다시 결집한 것이 성과라는 분석이다.
여권에서 제1야당의 장외투쟁을 대권행보로 부를 만큼 황 대표가 차기 대선 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데에도 꽤 득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 연일 지지층을 상대로 “좌파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보수 선명성을 강화해 다른 대선 주자들과의 경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것이다.
점잖은 법조인 출신 공직자 이미지에 더해 평소 화술이 모호하고 답답해 ‘고구마 화법’으로 비유되곤 했던 황 대표의 말은 민생투쟁을 거치면서 갈수록 독해졌다.
민생투쟁 기간 동안 “문재인 정부는 폭탄 정권”, “진짜 독재자의 후예(김정은)에게는 말 한마디 못하는 대변인(문재인 대통령)”, “최악의 경제를 만든 문재인 정권은 최악의 정권”, “탈원전 결과는 세금폭탄” 등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한 극언을 거침없이 쏟아 냈다. ‘귀족정당’ 이미지가 고착화된 자유한국당에 야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무색할 만큼 정치 경험이 일천한 한계를 딛고 예상보다 강한 대여 투쟁력을 보여줬다. 이러한 황 대표의 ‘야성’은 당을 장악하는 데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에 대해 황교안 대표는 “발언 수위가 세졌다는 것보다도 현장 상황에 따른 아픔과 고통을 보면 이야기가 세질 수밖에 없고 국민들의 눈물과 안타까움을 들으면 저도 또 마음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며 “상황에 따라 해야할 말들을 하고 들은 얘기 중에 국민들과 공유해야 할 얘기를 했다. 그 과정에 혹시라도 부적절한 말이 있었거나 과도한 말이 있었다고 하면 국민들에게 이해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황 대표의 수위 높은 발언은 보수 지지층의 결집에는 효과적이었으나 내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수를 확보하기 위해 공략이 필요한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장에는 걸림돌이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정작 당 내에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일각에서는 황 대표가 장외투쟁의 최우선 목표를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 기반 다지기에 두고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강성 발언을 의도적으로 던진 것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이번 장외투쟁의 목표는 보수 지지층 결집”이라며 “보수 대통합도 이루지 못하고 지지율도 예전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전략은 지금 시점에서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취임 초반 다소 기간이 걸리더라도 보수 대통합을 먼저 이룬 다음 중도층으로의 외연확장을 도모하겠다고 밝힌 황 대표의 구상과도 일치한다.
황 대표는 “민생대장정을 통해서 ‘보수가 결집해야겠다’, ‘외연을 확대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진행 과정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며 “오로지 국민 속으로 들어가서 국민들의 마음을 얻고 국민들의 아픔을 직접 목격하고 필요한 일들을 정리하고 메모하면서 필요한 일을 했을 뿐이다”라고 했다.
다만 황 대표가 민생투쟁 과정에서 장외투쟁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패착도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독교 신자인 황 대표가 지난 ‘부처님오신날’에 사찰을 방문했지만 불교 의식인 합장을 따르지 않아 발단이 된 종교 차별 논란이 대표적이다. 조계종이 유감 성명을 내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이를 비판하는 입장문을 내면서 종교 갈등으로 확전됐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공당의 대표라면 ‘나만의 신앙’을 추구하는 대신 다른 종교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법요식에서 예를 갖출 필요가 있지 않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결국 황 대표가 정치 신인 딱지를 떼고 대중 정치인으로서 아직 경험과 감각이 부족하다는 반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밖에 지난 17일 세종맘과의 간담회에서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밝힌 대목도 ‘혐오 정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당내 ‘5·18망언’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채 강행한 광주행은 민생 대장정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보다는 반감만 더 키워 호남에서의 고립을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민생행보를 마무리 지은 황 대표는 당분간 숨 고르기를 통해 당내 밀린 현안과 정국 구상에 몰입할 것으로 보여진다.
우선 추경, 최저임금, 산불 피해, 미세먼지 등 민생 현안이 산적한 국회를 최대한 빨리 정상화하는 게 관건이다. 민생 대장정 현장에서 국민들의 요구사항을 당의 정책에 반영하고 이를 입법화 하는 숙제도 남아 있다. 당 일각에서는 한 달 가까운 장외투쟁으로 대여 공세를 강화했지만 집권여당이 한국당의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는 만큼 투쟁 전략에 변화를 줄 필요성도 거론된다.
장제원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지금 국민들의 눈에 비치는 자유한국당은 강력한 투쟁을 하고 있는 ‘강한 야당’도 따뜻하게 민생을 살피고 있는 ‘합리적 야당’도 아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어정쩡한 야당’의 모습”이라며 “20대 국회 완전히 문 닫고 무서운 투쟁을 통해 항복을 받아낼 것인지, 아니면 민생을 위한 조건 없는 등원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5·18 망언’ 의원 징계 문제와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 추천을 조속히 마무리해 호남 민심을 달랠 필요가 있다. 내년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은 만큼 계파 갈등을 재연되지 않도록 공천 개혁과 인재 영입, 당 안팎 조직 정비 등 총선 전략도 본격적으로 짜야 할 시점이다.
황 대표가 국회에 발이 묶일 필요가 없는 ‘원외 인사’인 만큼 정국 돌파가 여의치 않을 경우 장외 투쟁을 다시 재개하지 않겠냐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당내 피로감이 만만치 않은 데다 ‘민생은 뒷전’이라는 여권 프레임에 완전히 갇힐 수 있어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당의 한 관계자는 “당 지지율이 30% 이상 오르긴 했지만 우리가 잘 해서라기보다는 정부 여당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을 본 측면이 더 크다”며 “이럴 때일 수록 분위기에 취해 자만하지 않고 국민과 민생만 보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했다.
황교안 대표는 민생 대장정을 마친 소감으로 “첫 번째 국민속으로 민생투쟁대장정은 마치게 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고 서민들을 챙기고 또 우리 국민들의 민생을 살피는 이런 일은 여전히 계속돼야 할 것”이라며 “기회가 되는대로 (국민들에게) 찾아가고 다가가 많은 이야기를 듣겠다. 듣는데 그치지 않고 당의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패스트트랙에 올린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에 관한 법률 이런 부분들이 이대로 가게 할 수는 없다”며 “이 나라가 반(反)민주의 길에 가게 할 순 없다. 이 투쟁을 계속해 나가고, 필요하다면 장외투쟁을 계속 이어나갈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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