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도 힘든데 마약을?”…삼엄한 통제 北이 ‘빙두’에 빠진 배경은?[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31일 14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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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북한에서 특권층, 평양시민, 농어촌 거주민을 막론하고 마약 소비가 성행하며 심지어 명절 선물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바 있습니다. 삼엄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북한 사회에서 광범위한 마약유통이 이루어진다는 점이 모순적이라 생각되는데 북한 내에서 전 사회적 마약 중독 현상이 나타나게 된 배경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북한 당국은 마약중독자들에 대해 어떤 조처를 하는지도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박기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15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A. 북한에서 마약이 횡행한다는 이야기를 접한 많은 분들은 “먹고 살기도 힘든 곳에서 마약을?”이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북한에 마약이 퍼져있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사실로 보입니다. 북한에서 널리 쓰이는 마약은 ‘빙두’ 또는 ‘얼음’으로 불리는 메스암페타민으로, 우리가 흔히 ‘필로폰’이라고 부르는 마약입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함흥지역 제약공장 과학자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마약거래상들로부터 돈을 받고 마약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알려집니다. 빙두 가격은 1그램에 20~30달러 정도로 북한의 물가를 고려하면 꽤 비싼 편입니다. 따라서 빙두는 경제력이 있는 당 간부들 사이에서 먼저 퍼져나갔으며 2000년대 후반부터는 일반 주민들도 상당수 사용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전문가들은 국내 유통 마약의 상당 부분이 북한산 마약으로 중국과 동남아 등을 거쳐 국내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경찰이 태국에서 3700억 원 상당의 필로폰 112kg을 밀반입하려던 일당을 체포한 뒤 증거물을 공개한 모습. 
동아일보DB.
전문가들은 국내 유통 마약의 상당 부분이 북한산 마약으로 중국과 동남아 등을 거쳐 국내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경찰이 태국에서 3700억 원 상당의 필로폰 112kg을 밀반입하려던 일당을 체포한 뒤 증거물을 공개한 모습. 동아일보DB.

북한사람들이 빙두를 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먼저 의료가 일천한 북한에서는 빙두가 응급처치약으로 쓰이곤 합니다. 뇌혈전이나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쓰러질 경우 빙두를 하면 살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있어서 주로 노인들이 집에 1~2그램씩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빙두가 각종 질환을 고치는데 효과가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약을 약으로 사용하는 이들은 빙두가 중독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빙두가 북한 사회에 퍼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밀수꾼들이 빙두를 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국경경비대의 시선을 피해 밤에 몰래 밀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빙두의 각성 효과를 빌린다는 것입니다. 빙두를 하면 2~3일씩 잠을 자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또렷해진다고 합니다. 송금 브로커로 일한 적이 있는 한 북한이탈주민은 밤마다 중국과 전화 연결을 하기 위해 전파가 잘 잡히는 산 꼭대기에 올라야 했는데, 산에 오르는 것이 너무 힘들어 출발 직전 늘 빙두를 했다고 합니다. 물론 재미나 유흥을 위해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빙두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북한이탈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양강도 혜산시와 같은 국경지역 도시에서는 빙두를 적어도 한 번쯤 해본 이가 절반은 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안 해본 이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북한과 같이 당국의 통제가 심한 사회에서 어떻게 마약이 이렇게 널리 사용될 수 있을까요? 마약을 단속해야 할 보위부원, 보안원 등 이른바 ‘법관’들이 마약을 단속하기는커녕, 단속에 적발된 마약을 압수한 뒤 본인이 직접 그 마약을 하거나 아니면 팔아먹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보위부원이나 보안원 전원이 빙두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빙두를 압수해 팔아먹는 건 ‘밑천이 안 드는 장사’이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꽤나 지속적으로 관련 증언이 수집되는 것을 보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북한은 2013년 형법을 수정하여 마약제조 및 유통을 사형까지도 가능한 범죄로 형량을 대폭 강화하였습니다. 이전까지는 사안이 아무리 중해도 마약제조는 5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징역형), 마약밀수 및 밀매는 10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에 처해졌습니다. 마약 범죄는 북한 형법 상 ‘사회주의문화를 침해한 범죄’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이 사회주의 안에 부르주아 반동문화를 침투시켜 체제 전복을 꾀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불건전한 문화를 책동하는 사회주의문화 범죄는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정치범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처벌의 강화가 실제로 마약의 확산을 저지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처벌이 강화되면 오히려 처벌을 피하기 위한 뇌물의 액수만 커진다는 해석을 내어놓기도 합니다. 북한에서 근절되지 못한 마약 범죄는 한국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2016년 공개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내 교도소에 수감된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마약 사범이 가장 높은 비중(29.5%)을 차지했습니다. 마약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마약이 범죄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마약 중독 예방교육과 남한의 법문화 및 준법의식 교육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김수경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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