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순방서 남북회담 촉구…김정은 만남 적극 제안은 6개월만
金, 작년 서울 대신 하노이 집중…남북미 정상 깜짝 만남 가능성 거론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 김 위원장의 결단에 달린 문제다.”(2018년 12월1일 공군1호기 안에서)
“나는 김 위원장과 언제든 만날 준비가 돼 있다. 우리의 만남 여부와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김 위원장의 선택이다.”(2019년 6월12일 오슬로 포럼에서)
대화의 빗장을 걸어 잠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개 메시지가 6개월 만에 나왔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 자체가 불투명 하던 때 한 차례 팔을 걷어 붙였던 문 대통령이 ‘하노이 노딜’ 이후 처음으로 김 위원장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북미 대화 중재를 위한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뢰관계가 보다 두터운 김 위원장과의 우선적인 남북 대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북미 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게 흔들림 없는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남북관계 발전이 북미관계 개선을 이끄는 선순환 관계로 이어진다는 ‘두 바퀴 평화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문 대통령은 12일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열린 ‘오슬로 포럼’ 기조연설뒤 대담에서 김 위원장과의 만남이 6월 말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보다 먼저 이뤄질 가능성에 “가능하다면 그 이전에 김 위원장을 만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 역시 김 위원장의 선택에 달렸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다”며 성사 여부의 공을 김 위원장에게 돌렸다.
문 대통령은 또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보다 조기에 만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비록 대화의 모멘텀이 유지되고 있다 하더라도 대화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대화에 대한 열정이 식을 수 있다“며 조속한 북미 대화의 재개를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북유럽 3국 순방 기간 동안 제시한 한반도 평화의 원칙과 방향성을 담은 ’오슬로 구상‘과 비핵화 협상을 위해 필요한 실질적 제안인 ’스톡홀름 제안‘을 잇따라 제시했다.
노벨평화상의 나라이면서 자발적으로 핵무기 보유를 포기한 스웨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을 중재한 ’오슬로 협정‘의 노르웨이가 주는 공간적 배경을 한반도 평화를 역설하기 위한 무대로 삼았다.
순방 기간 역사적인 6·12 싱가포르 제1차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이 지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를 강조할 시간적 배경도 맞아 떨어졌다.
국제사회 앞에 새롭게 보완한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평화 비전을 천명하고, 이를 동력삼아 ’하노이 노딜‘ 이후 확실히 떨어진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어올린다는 복안도 함께 깔려있다.
문 대통령의 연설과 발언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 여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쳐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든 김 위원장의 친서의 유무를 넘어서 내용까지 이미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도 자신감의 표현으로 읽혔다.
문 대통령은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으면서도 ”친서 내용 속에는 아주 흥미로운 대목도 있다“고 소개하며 국제사회의 많은 관심을 사기도 했다.
4·11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직후 수석 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 ”이제 남북 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추진할 시점“이라던 문 대통령의 신중한 모습과는 확실히 달라진 태도라 할 수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북한의 형편이 되는 대로 장소와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남과 북이 마주 앉아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넘어서는 진전된 결실을 맺을 방안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의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조심스럽고 소극적 제안에 머물렀었다.
문 대통령이 이토록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필요성과 추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은 지난해 말 이후 6개월 만이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9·19 평양 선언 마지막 조항에 명시적으로 포함시킨 뒤 지난해 연말 안에 성사시키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이어진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이 난항에 부딪혔다. 남북 정상회담을 언급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
조건부 대북 제재완화론으로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시키려던 문 대통령의 유럽 4개국 순방도 기대 이하의 성과에 머무는 등 당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국면이 전개됐던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됐다.
이에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환기시키며 북미-남북 간 비핵화 대화의 동력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기울였다. 북미 정상이 어떻게든 마주할 수 있도록 남북 회담이 디딤돌 역할을 해야한다는 뜻에서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일 뉴질랜드 국빈 방문을 위해 이동 중이던 공군1호기 내에서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은 아직 가능성이 열려 있다“면서 ”하지만 연내 답방할지 여부는 김 위원장의 결단에 달린 문제“라고 밝히며 서울 답방을 공론화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이러한 노력에도 김 위원장의 답방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말에 문 대통령에게 서울 방문이 실현되기를 기대했지만 이뤄지지 못해 아쉽다는 내용의 친서를 보내 양해를 구했다.
김 위원장이 친서를 통해 문 대통령에게 양해를 구한 것은 두 달 뒤 하노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담판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북미 정상회담 준비 외에 남북 정상회담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의 답방은) 제2차 북미 정상회담과 연동되는 것이기 때문에 북미회담이 먼저 이뤄지고 나면 그 이후에 조금 더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 뒤에 열릴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뒤늦게 인정했다.
이처럼 문 대통령은 6개월 간격을 두고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적극적인 추진 의사를 재차 밝히고는 있지만 차이점도 존재한다.
정상간의 ’톱다운(Top-down·정상 간 합의를 하위로 이행하는 방식)‘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보텀업(Bottom-up·실무 레벨에서부터 상위로 협의를 진행하는 방식)‘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스테판 뢰벤 총리와의 정상회담뒤 기자회견에서 ”북·미 간 협상의 진전을 위해서는 사전에 실무협상을 열 필요가 있다“며 ”실무협상을 토대로 양 정상 간 회담이 이뤄져야 지난번 하노이 2차 정상회담처럼 합의 없이 헤어지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속한 의사결정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톱다운 방식의 효용성만을 강조해 온 문 대통령이 ’보텀업‘ 방식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사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과 이어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고려할 때 실질적으로 ’원포인트‘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준비 기간도 빠듯하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이용해 판문점에서의 남북미 3자 정상 만남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6월 말 방한을 계기로 남북미 3자 정상이 함께 판문점에서 만나는 방안이 가장 좋을수 있다“면서 ”다만 만난다면 최소한 정치적 성격의 종전선언 정도는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중국을 어떻게 설득하느냐 여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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