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주석의 방북 택일 추적기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8일 14시 00분


지난해 이후 북핵 대화 국면에서 종종 ‘서울의 베이징 외교 소식통’들을 만날 때마다, 단연 주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 시점이었습니다. 시 주석은 올해 1월까지 모두 네 차례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베이징 등으로 불러들였지만, 약속한 평양 답방은 미루어왔습니다. 소식통의 전언을 시기적으로 복기하면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최고지도자인 시 주석의 평양 방문 시기를 놓고 매우 오랜 시간 고민을 거듭해 왔습니다.

지난해 9월 초 소식통을 만났을 때 역시 시 주석의 방북설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앞두고 싱가포르 북-미 1차 정상회담 이후 공전 상태였던 비핵화 대화가 다시 활로를 모색하던 시기였습니다. 김 위원장이 이미 3월과 5월, 6월 세 차례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을 만난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히 시 주석이 평양을 방문해 회담 진전을 위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파다했습니다.

하지만 소식통들은 이런 관측을 부인했습니다. 시 주석은 아직 한 번도 평양에 가겠다는 의시표시를 한 적이 없고, 시 주석이 평양에 간다는 해외언론들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 소식통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베이징에서는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판단이 더 강합니다. 싱가포르 회담이 끝난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회담이 빨리 진전되지 않는 원인을 중국에 돌렸습니다. 이른바 ‘중국 배후론’이죠. 이런 가운데 시 주석이 평양에 가게 되면 중국이 스스로 배후론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모양새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오히려 내년(2019년)은 중국과 북한이 국교를 수립한지 70주년이 되니 이를 기념하는 명분으로 방북하는 것이 옳다는 기류가 많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실제로 시 주석은 지난해 방북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1월 8일 김 위원장을 다시 한번 베이징에 불러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북-중 양국 공조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2월 말 하노이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담이 결렬로 끝났지만 시 주석은 역시 방북 카드를 쓰지 않았습니다. 4월 1일 만난 베이징 소식통에게 다시 전망을 요청했습니다.

“하나도 정보 없이 분석하는 겁니다. 6월에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가 있잖아요?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되면 일본에 가시게 될 겁니다. 아베 총리가 지난해 중국을 방문했고 중일 관계가 좋아지는 상황입니다. 일본에 가는데 한국에 안 오면 한국 분들 서운해 하시잖아요. 문재인 대통령도 중국을 방문하신 상황이고. 한국에 오시게 되면 북한 안 찾아가면 서운하겠지요. 그런 이유로 6월 중에 동북아 3국 방문이 이뤄지지 않을까 합니다.”

시 주석이 20일과 21일 평양을 방문한다고 17일 오후 북한과 중국이 동시에 발표하면서 이 소식통의 ‘정보 없는 분석’은 맞아 떨어졌습니다. 시 주석이 한국도 방문할 것이란 전망만 빼고 말이죠. 어제 양국 발표를 두고 다양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 지도부가 시 주석의 평양 방문을 놓고 지난해부터 고민해 왔으며 올해 성사를 목표로 고민해 왔다는 점입니다. G20 일본 회의를 계기로 하는 것이 유력한 선택지였고, 최근 그것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올해 1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올해 1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무역과 5G 기술 전쟁 등 다방면에 걸친 미-중 패권전쟁의 심화 과정에 이뤄지는 시 주석의 이번 방북은 하노이 회담 이후 공전상태인 북-미 비핵화 대화와 남북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크게 보면 시 주석의 이번 방북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과 중국, 러시아와의 전통적인 우방관계를 강화하는 수순으로 볼 수 있습니다. 4월 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이은 14년만의 중국 최고지도자 방북은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적한 ‘중국 배후론’을 사실상 공개적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시 주석은 이달 초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북한 비핵화와 북한의 안전보장 및 경제 발전을 맞교환해야 한다”고 언급했고 쑹타오 대외연락부장은 어제 “중국은 북한이 새로운 전략 노선을 실시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새로운 전략 노선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언급한 “정전협상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계를 평화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1월 8일 북-중 4차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한반도 정세 관리와 비핵화 협상 과정을 공동으로 연구·조정해 나가는 문제와 관련해 심도 깊고 솔직한 의사소통을 진행했다”고 밝힌 대목과도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요컨대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은 중국 및 러시아와의 동맹관계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국과 일본의 3각 동맹 및 협력관계의 이해를 저해하는 것이지요. 이미 중국과 러시아는 대규모 인도적 식량 지원 및 비공식 에너지 지원 등을 통해 미국이 이끄는 국제사회의 제재 레짐을 완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중러 3국의 최근 정상 간 대화는 이를 위한 정치적 스크럼을 강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경제와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미국이 중국이 가진 대북 레버리지를 더 활용해 달라고 요구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의 노력에 적지 않은 차질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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