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신임 대통령정책실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포함해 재계 총수 누구와도 만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투자를 확대해 일자리를 늘리려면 기업과의 실질적인 소통이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재계 및 노동시장과의 대화를 비공식적으로 할 것이라고 밝혀 김 실장의 행보가 성과가 미미한 형식적 간담회 차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재계 등 이해관계자와 접촉할 것”
김 실장은 21일 정책실장으로 선임된 직후 자신이 만나야 할 이해관계자의 범주와 일정부터 체크했다고 밝혔다. 투자와 수출 부진으로 경제가 곤두박질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실제 그는 “공정거래위원회는 조사와 제재 기능을 하기 때문에 이해관계자를 접촉하는 데 제약이 있지만, 정책실장은 재계를 포함한 이해관계자와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김 실장이 전임 실장들에 비해 유연한 정책조합(폴리시믹스)을 추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는 “경제환경에 필요한 정책을 보완하는 충분한 유연성을 갖출 것”이라고 했다. 현 정부 초기 소득주도성장론에 드라이브를 건 장하성 전 실장은 성장보다는 분배를 강조한 측면이 있다. 부동산 전문가인 김수현 전 실장은 기업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에 대해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 전 분야의 정책에 정책실장이 적극성을 보여주면 기업 입장에서도 언로(言路)가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소통 방식은) 물론 대부분 비공식”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보여주기 식이 아닌 기업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보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룹 총수를 가리지 않고 만나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발언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한국 경제는 올 1분기(1∼3월) 성장률이 전기 대비 ―0.4%를 나타내는 등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일자리가 늘지 않고 소득 수준도 높아지지 않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재정을 들여 각종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함에 따라 정책 효과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부처를 돕는 후선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 투자가 늘어야 양질의 일자리가 늘고 그 결과 성장률도 높아지는데 지금은 이런 선순환 구조가 깨진 상태”라며 “김 실장도 이런 점을 감안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 민감한 노동이슈 조정자 역할 할지 주목
김 실장은 재계와의 대화를 언급하면서 노동시장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길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경제라는 세발자전거가 속도를 내려면 재계, 노동계, 정부라는 세 바퀴가 따로 돌아서는 안 되고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움직여야 한다고 본 것이다. 김 실장은 올 초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재임할 당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의 얘기도 듣고 시민사회와 노조의 얘기를 들으며 조정하고 성과를 만드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며 “정부와 노동조합과의 밀월관계는 끝났다”고까지 했다. 현재 재계와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최저임금 문제 등 핵심 이슈와 관련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대립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조정자 역할을 제대로 못 하면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알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김 실장은 실용적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효율성과 자율성의 절충점을 찾아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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