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채널 끊긴 한일 외교 ‘먹통’… 정부, 日의도 제대로 파악 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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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경제보복 파장]한일 관계, 수교이후 최대 고비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 등을 한국에 수출하는 것을 제한하겠다고 밝힌 다음 날인 2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여성 관련 행사에 참석해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국무위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왼쪽)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의 모습이 보인다. 뉴시스·청와대사진기자단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 등을 한국에 수출하는 것을 제한하겠다고 밝힌 다음 날인 2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여성 관련 행사에 참석해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국무위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왼쪽)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의 모습이 보인다. 뉴시스·청와대사진기자단
과거사 문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1965년 양국 수교 이후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 사상 최초로 한국을 겨냥한 경제 보복 조치를 꺼내든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까지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확전을 자제하기 위해 맞대응을 피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 청와대의 고민이다. 특히 갈등 상황을 풀어갈 최소한의 외교 채널이 작동하지 않고 있어 정부 차원에서 도쿄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전쟁 중에도 외교 채널은 유지하는데 현재 한일 관계는 우방이라고 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 아베까지 가세했지만 국무회의에서 논의 안 하며 대응 자제하는 靑


아베 총리는 2일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일본 정부가 발표한 수출 제한 조치에 대해 “일본은 모든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와 정합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유무역과는 관계없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우리 정부가 WTO 제소 카드로 대응하자 재차 반박에 나선 것. 아베 총리는 “국가의 신뢰관계로 행해온 조치를 수정한 것”이라고도 했다. 여기에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 고위 관료의 말을 인용해 “아직 이것이 끝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추가 대항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청와대 내부에서는 “일본 정부가 너무 나갔다”며 격앙된 분위기이면서도 직접 대응은 자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주재한 국무회의에선 이 문제가 논의되지 않았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굉장히 조심스럽다. 국가 간 문제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의 수출 규제를 보복 조치로 보느냐는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앞으로 관련 입장 등은 산업통상자원부를 통해 나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청와대는 직접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외교부 역시 “이번 조치 철회를 촉구해 나가면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청와대가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무엇보다 맞대응 카드나 해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딱히 일본에 타격을 입힐 수 있을 만한 조치는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국무회의 후 브리핑에서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해 “수입처 다변화, 국내 생산설비 확충 등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도 일본을 향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청와대는 회의적이다. 한 관계자는 “우리가 일본을 향한 보복 조치를 하면 나중에 다른 국가가 우리를 상대로 한 무역 압박을 취할 때 방어 논리가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 여권에서도 “日 참의원 선거 이후 정상 간 소통으로 외교 채널 가동해야”


일단 청와대는 21일 열리는 일본 참의원 선거 이후의 상황을 지켜볼 계획이다. 일본의 강경 모드는 다분히 참의원 선거를 의식한 조치인 만큼 선거 뒤에는 이런 흐름이 바뀔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일본이 선거와 무관하게 이번 조치를 오랫동안 준비해온 만큼 마냥 선거 이후를 기다려봤자 별다른 해법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많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의 한일 관계가 ‘외교 진공’ 상태인 만큼 선거 이후라고 별다른 외교적 해법이 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당시 ‘8초 악수’가 보여준 것처럼 양국 정상 간의 관계는 역대 최악 수준이다. 여기에 주일대사 교체 등에도 불구하고 외교 실무 라인의 대화도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청와대가 ‘법원의 결정이라 정부는 관여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는 한 실무자들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여권에서도 “파국을 막기 위해 일본 참의원 선거 뒤 한일 정상이 어떤 식으로든 소통해 외교적 채널을 재가동할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여당 의원은 “지금의 갈등 상황은 외교부가 나선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라며 “감정은 접고 정상 간 소통을 통해 문제 해결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 박효목 기자

#한일 갈등#일본 경제보복#반도체 수출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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