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부품에 대한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해 “일본 측의 조치 철회와 양국 간 성의 있는 협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제공) 2019.7.8/뉴스1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이번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는 상호의존과 상호공생으로 반세기간 축적해온 한일경제협력의 틀을 깨는 것”이라며 “우리가 일본 정부의 수출제한 조치를 엄중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 모두발언에서 “한국 경제와 일본 경제는 깊이 맞물려 있다.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은 서로 도우며 함께 경제를 발전시켜 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제조업 분야는 한국이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를 겪으면서도 국제분업질서 속에서 부품·소재부터 완성품 생산까지 전 과정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함께 성장해 왔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이번 일본의 조치와 관련해 공개석상에서 언급한 것은 지난주 8일과 10일에 이어 이번이 3번째다.
이날 발언은 정부가 이번 일본의 조치를 단순한 일회성 무역분쟁이 아니라 한일경제협력 역사의 근간을 뒤흔드는 엄중한 사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앞으로 이번 사안을 넘어 일본과의 경제협력 관계 전반을 대하는 우리 정부의 철학과 기조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경고를 담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더구나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는 자국 산업의 피해를 막기 위한 통상적인 보호무역 조치와는 방법도 목적도 다르다”며 특히 “우리는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가 한국 경제의 핵심 경쟁력인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 제한으로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는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높은 성장을 도모하는 시기에 우리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나 다름없다”며 “일본의 의도가 거기에 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 강제징용 판결 등 과거사 문제는 물론이고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제하려는 등의 복합적인 의도가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 기업들이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우리는 과거 여러차례 전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했듯이 이번에도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일본과의 제조업 분업체계에 대한 신뢰를 깨뜨려 우리 기업들은 일본의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수입처를 다변화하거나 국산화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며 “결국에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일을 우리 경제의 전화위복 기회로 삼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며 “외교적 해결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지만 한편으로 기업이 이 상황을 자신감 있게 대응해 나갈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기왕에 추진해오던 경제 체질개선 노력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애초 문제삼은 강제징용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하며 일본측 태도를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양국은 과거사 문제를 별도로 관리하면서 그로 인해 경제, 문화, 외교안보 분야의 협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왔다”며 “일본이 이번에 전례없이 과거사 문제를 경제 문제와 연계한 것은 양국 관계 발전의 역사에 역행하는,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행 문제의 원만한 외교적 해결 방안을 일본 정부에 제시했다. 우리가 제시한 방안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한 바 없다”며 “양국 국민들과 피해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함께 논의해 보자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아무런 외교적 협의나 노력 없이 일방적 조치를 전격적으로 취했다”며 “일본 정부는 일방적인 압박을 거두고 이제라도 외교적 해결의 장으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은 당초 강제징용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조치의 이유로 내세웠다가 개인과 기업간의 민사 판결을 통상 문제로 연계하는 데 대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우리에게 전략물자 밀반출과 대북제재 위반의 의혹이 있기 때문인 양 말을 바꿨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러나 이는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를 모범적으로 이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고 제제의 틀 안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는 우리 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또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지지하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동참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공동 노력에 대해 불신을 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그런 의혹을 실제로 가지고 있었다면 우방국으로서 한국에 먼저 문제제기를 하거나 국제감시기구에 문제제기를 하면 될 텐데 사전에 아무 말이 없었다가 느닷없는 의혹을 제기했다”며 “논란의 과정에서 오히려 일본의 수출 통제에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문 대통령은 “이 점에 대해서는 양국이 더이상 소모적 논쟁을 할 필요가 없다”며 “일본이 의혹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면 이미 우리 정부가 제안한 대로 양국이 함께 국제기구의 검증을 받아 의혹을 해소하고 그 결과에 따르면 될 일”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문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기업들이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란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도전들을 이겨내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에 이르렀다”며 “숱한 고비와 도전을 이겨온 것은 언제나 국민의 힘이었다. 저와 정부는 변함없이 국민의 힘을 믿고 엄중한 상황을 헤쳐 나갈 것”이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국회와 정치권의 초당적인 협력도 당부드린다”며 “지금의 경제 상황을 엄중하게 본다면 그럴수록 협력을 서둘러 주실 것을 간곡하게 당부 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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