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에 예고한 화이트리스트 국가(백색국가) 제외가 현실화되면 한미일 3각 공조 체제에 상당한 균열이 발생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이 같은 동북아 안보 질서 흔들기는 미국이 좌시할 수 없는 범위라는 진단이 나온다.
일본 정부는 지난 12일 도쿄(東京)에서 열린 한일 양자 실무협의에서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우호국) 제외 방침과 관련, “24일까지 의견 수렴을 거치게 돼 있고, 그 다음에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하면 공포를 한다. 공포 후 21일이 경과한 날로부터 시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예상은 8월 중순쯤이 유력하다. 앞서 이호현 산업부 무역정책관은 “각의 결정이 얼마나 빨리 이뤄지느냐에 따라서 시행 시기는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 규제를 받게 되는 부품 혹은 소재는 1100개가 넘는다.
박정진 일본 쓰다주쿠대학(津田塾大學)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전일(14일) 뉴스1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화이트리스트 제외는) 전적으로 안보에 관련한 조치로 통상 관계와는 무관하다”며 “일본이 안보 정책에서 한국의 위상을 재정의하고 있다는 의미이고 이는 곧 한일 관계의 근본적인 재편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일제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에 불만을 갖고 경제 보복을 시작했고, 이제는 안보를 볼모로 한일 간 관계를 바닥에서부터 재편하려 한다는 것이다.
한일 간 안보 협력은 전후 동아시아에서 집단안전보장의 기본틀인 한미동맹, 미일동맹을 보완하는 구조로 발전돼왔다. 미국과의 동맹을 고리로, 이익을 공유하면서, 갈등을 억제하고, 협력을 증진시켜왔다.
시기별로는, 1980년대 이전 냉전기엔 한일 양국 간 역사 인식 문제와 미국과의 안보 관계 우선시로 인해 양국 간 안보에 대한 실제적 협력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1990년대엔 북한 핵위기를 계기로 양국 간 방위교류가 본격화됐다.
이후엔 미국의 적극적 권유가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일본은 미일 동맹을 재정의하고 미국이 추진하는 세계 전략의 동반자가 됐다. 한국도 2009년 공동 비전을 통해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한미일 안보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됐다.
이 같은 인식에서 미국의 등판이 시간문제일 뿐라는 예상이 나온다. 일본 사정에 밝은 한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그전과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미국이) 어느 시점에선 들어올 수밖에 없다”며 “(미국의 태도에 대해선) 주미 일본대사관에서 온갖 로비를 다 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미국이 양국 간 갈등의 여파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이 차질을 빚을까 우려를 나타낸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소미아가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언급이 미국(행정부에)서 일부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일각에선 한일 간 안보 협력은 역사 인식 문제로 부침을 거듭했고, 또 내용에선 알맹이가 없기 때문에 안보 측면에서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당장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한일 안보협력은 실질적 내용이 없다. 테러와 해적퇴치, 군인들 간 인적교류 등이다. 공동 군사 작전한 적도 없다. 영양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안보 측면에서의 지나친 우려를 경계했다.
양 교수는 다만, “리스트에서 제외되면, 다시 올리기 위해선 일본 내에서 명분이 쌓여야 되니까 몇년은 걸릴 것이다”며 “그걸 하게 되면 올해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내내 한일 간에 불신감이 커질 것 같아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을 방문 중인 스틸웰 차관보는 지난 12일 보도된 NHK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굳건한 동맹 관계에 틈이나 균열이 생기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내가 (한일 양국을) 중재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스틸웰 차관보는 오는 16~18일 방한하며, 17일 오후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예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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