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와 관련해 미국이 한일 양자 간의 중재는 아니지만 이 문제에 관여(engage)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 중 한쪽 편을 들어줄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개입할 수 있다는 얘기여서 워싱턴의 향후 역할이 주목된다.
지난주 미국으로 급파돼 백악관 및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들과 한일 관계 전반을 논의한 외교부 당국자는 15일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입장에 대해 “(한일 갈등에) 관여해 현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중립적인 입장에 서겠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한일 갈등을 해소하는 데 모종의 역할을 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것이다.
이 당국자는 이어 “미국이 솔직하게 한국과 일본 중 한쪽 편을 들기는 어려울 것이란 의견을 알려왔다”면서도 “이 문제에 관여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했다”고 전했다. “미국이 적극적인 중재(arbitrate)나 조정(mediate)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데는 난색을 표했으나 ‘관여’ 의지만큼은 분명하며 미국이 해야 할 합당한 역할이 있는지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 당국자는 미국이 이미 행동에 나섰다는 점도 시사했다. “미국이 (일본 보복 조치 이후) 한미일 간 조율을 한 번 시도한 적이 있는데 일본이 준비가 안 돼 성사되지 못했다”는 것. 이는 데이비스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방일 중이던 12일 한미일 차관보급 협의를 갖자고 제안했으나 일본이 이를 수용하지 않아 만남이 무산됐던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이 구체적인 관여 방안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문제의식을 처음 공유한 것으로 현재로는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미국이 더 이상 모른 체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당국자는 “미국은 현재 한일 간 경제 분야의 갈등이 어떤 경우에도 안보 분야에 영향을 미쳐 한미일이 굳건하게 지켜온 이 분야의 협력을 해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안보 협력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도 언급됐으며, 미국이 “그것(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언급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로 한국의 반도체 업계가 영향을 받으면서 ‘제3국’이 어부지리로 이득을 얻는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당국자는 “우리는 ‘(한일) 무역전쟁에는 승자가 없고, 그 이익은 제3자가 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고, 미국이 적극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제3자’는 중국을 지칭한 것으로 중국 반도체 업계가 반사이익을 얻는 시나리오를 미국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의 규모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당국자는 우리 대표단이 피해자 규모를 1500명으로 추산하고 1인당 1억 원의 배상액을 책정했을 때 총 1500억 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하자 미 측이 “놀라워했다”고 말했다. 1500억 원이라면 한국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 이틀 치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인데, 한일 양국 기업의 의지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규모 아니냐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외교 당국은 또한 일본이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 부실을 거론하며 이를 수출 규제 조치의 근거로 삼는 것에 대해 일본의 ‘자충수’라고 미국에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측도 일본이 주장하는 한국의 ‘부적절 사례’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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