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62·사진)이 16일 오후 4시 25분경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인근 북한산 자락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정 전 의원은 이날 오후 2시 반경 북한산 자락길에서 자신의 운전사가 운전하는 차에서 내려 산 쪽으로 올라간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3시 42분경 정 전 의원의 부인은 그가 남긴 유서를 자택에서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 전 의원의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하고 드론과 구조견을 투입해 정 전 의원을 발견했다. 발견했을 때 정 전 의원은 이미 숨진 상태였다. 경찰은 유서를 남긴 점 등으로 미뤄 정 전 의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전 의원은 종이 한 장에 자필로 “가족에게 미안하고 사랑한다. 장례는 크게 치르지 마라. 조용하게 치러 달라. 어머니 옆에 화장해서 묻어 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에게는 “여보 사랑해”라고 유서에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그는 한때나마 ‘왕의 남자’였다. 행정고시 24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2000년 총선부터 정치권의 문을 두드린 그는 이상득 이재오 전 의원과 함께 2008년 이명박(MB)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이었다. MB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짜는 데도 핵심 역할을 했다. 50대 초반의 나이에 그는 권력의 정점에 서는 듯했다. 주변에 따르는 후배도 많아 ‘의원님’보다는 주로 ‘두언이 형’으로 불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정 전 의원은 2008년 MB 정부 출범 직후 이상득 전 의원과 정권의 2인자 자리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밀려 정부 조각 작업에서 막판 배제되기도 했다. 결국 같은 해 4월 치러진 18대 총선을 앞두고 이 전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55인 서명 파동을 일으켰고 자신이 만든 권력의 정점에서 급속히 멀어져갔다. 18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MB 저격수’를 자처한 그는 저축은행 불법 정치자금 의혹 사건에 휘말려 검찰 수사를 받았고, 2013년 1월부터 10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는 2014년 11월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고 정치적 재기를 노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2016년 20대 총선 낙선 후 우울증이 그를 덮쳤다.
지난해 그는 재혼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에는 서울 마포구에 일식집을 냈다. 그는 당시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먹고살려고 하는 것이다”라며 새 삶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전직 정권 실세가 발레 파킹을 해준다’는 소문에 그의 일식집은 잠시나마 정치인들이 자주 찾는 명소가 됐다. 거의 매일 1개 이상의 라디오와 TV에 출연하며 왕성한 활동을 했다.
정 전 의원을 지켜봐 온 지인들은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이날 아침에도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고, 15일에는 아내와 함께 자신이 운영하는 일식집을 찾았다고 한다. MB는 이재오 전 의원을 통해 한때 최측근에서 정적(政敵)으로 돌아선 정 전 의원 빈소에 조문 메시지를 보낼 계획이다.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은 19일 오전 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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