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접경서 정보수집 활동중… 中 당국에 적발된 뒤 포섭돼
국정원, 블랙요원 명단 유출 조사… 감청 영장 받아 3년여 추적 끝
日무관과 접선 사실도 밝혀내
주한 일본대사관 무관에게 군사기밀을 팔아넘긴 혐의로 지난해 재판에 넘겨진 국군정보사령부 간부가 수년 전 중국 당국에 포섭돼 ‘이중 스파이’로 활동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정보원 등은 H 씨의 이중 스파이 활동을 추적 감시하는 과정에서 그와 군사기밀을 거래하던 일본 무관들의 조직적인 첩보 수집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검찰 등에 따르면 H 씨는 2002년 정보사를 퇴역한 뒤에도 북-중 접경지역에서 ‘흑룡’이란 암호명의 첩보원으로 활동했다. 2010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암살미수 사건의 중요 정보를 수집해 제공하는 등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등과 협력관계를 이어왔다. 1984년부터 18년 동안 정보사에 근무한 H 씨는 국가안보에 기여한 공로로 퇴직 후 보국훈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정보기관에 신분이 탄로 나면서 H 씨의 첩보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H 씨는 중국산 고추를 파는 ‘오리엔탈 ○○’라는 위장업체를 만들어 사업자로 신분을 세탁했다. 하지만 10여 년간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중국 당국에 꼬리가 밟혔다. H 씨는 한국에 돌아가 기밀을 빼내는 조건으로 중국 측에 포섭됐다. 정보사 후배를 통해 6차례에 걸쳐 빼낸 중국 파견 정보관 명단(2급 군사비밀)을 중국 정보기관에 넘겼다. H 씨와 정보사 후배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올해 1월 1심에서 각각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국정원은 H 씨의 통화 내용을 감청한 끝에 그가 접선하던 또 다른 외국 정보요원을 파악했다. 주한 일본대사관에 파견된 자위대 영관급 장교(무관) A 씨였다. 그는 2015∼2017년 북한 및 주변국 군사정보 등 기밀 54건을 넘겨받는 대가로 H 씨에게 1920만 원을 건넸다.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지난해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돼 본국으로 조기 귀국 조치됐다.
3년간 일본 무관과 H 씨의 접선 내용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탈북민 출신 북한 관련 단체 대표 L 씨의 ‘정보 장사’ 단서도 포착됐다. 북한 호위사령부 출신으로 한국에 정착한 뒤 북한 정세분석보고서를 내던 L 씨는 첩보업계 선배인 H 씨를 ‘선생님’으로 부르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컴퓨터 사용이 서툰 H 씨는 자신이 빼낸 군사기밀을 일본 무관에게 넘기기 위해 L 씨에게 타이핑해 한글 파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L 씨는 저장한 파일을 자신이 정보를 팔던 또 다른 일본 무관 B 씨에게 돈을 받고 넘겼다. 똑같은 기밀이 복수의 경로로 입수된 사실을 일본 측이 H 씨에게 통보하는 내용이 감시망에 걸려들었다.
400만 원을 받고 군사기밀 20건을 넘긴 혐의로 기소된 L 씨는 비공개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넘긴 ‘장마당 물가’ 등이 북한 현지 주민을 통해 얻은 정보라고 항변했다. L 씨는 또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자신에게 일본 무관을 소개해준 사람이 기무사 요원이며 한국의 동맹국인 일본에 북한 정보를 넘기는 것은 죄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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