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한일 관계’ 상황서…아베, 북미협상 중재자? 훼방꾼?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5일 14시 00분





Q. 국내외 다수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일관적으로 현 비핵화 국면에서 한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일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는 그것이 비단 양국의 무역에 미치는 당장의 효과뿐 아니라 한반도 문제에 미칠 수 있는 중장기적인 영향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아베 총리는 북미 협상에서 중재자일 수도 혹은 훼방지일 수도 있을 텐데요, 각각의 경우 일본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노태구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13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A: 최근 한일 관계는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운전자론, 중재자 및 촉진자 역할을 강조하면서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 그리고 지난 6월 30일 남북미 판문점 회동까지 성사시켰습니다.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추진해 왔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7월 1일자로 일본은 한국에 대해 주요 수출품목에 대한 규제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고 화이트 국가군에게 제외하겠다고 하면서 그 명분으로 한국에 대한 ‘안보상의 불신’을 들고 있습니다.

물론 일본의 경제보복은 지난해 10월 일제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이후 한국이 외교적인 협의에 응하지 않고 ‘방치’했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국제법과 국내법, 그리고 피해자 중심이라는 굴레가 얽혀 있어 양국이 입장차를 좁히기에 간단치 않은 사안입니다. 이번 기회에 대일 무역의존도를 줄이고 우리의 산업구조의 변화를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단기간의 손해와 고통은 있겠으나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바로 한반도 평화 및 북한의 비핵화 추진과정에 있어서 일본의 역할입니다.

아베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이후 미국과 정상 간 신뢰관계 구축을 위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미국과 일본에서의 정상회담과 골프 회동 등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극진히 대접했고 그 결과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총리와의 특별한 관계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신뢰구축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이유는 미일동맹 강화와 동아시아 및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위상 확보 및 확대를 일본의 외교 기조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각별한’ 신뢰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아베 총리는 북미 협상에서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이 남북관계가 소원해 있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일본은 한국의 역할을 대신하려고 할 것입니다. 중재자 또는 촉진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북한과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추진할 수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현재까지 일본은 북미 협상에서 훼방꾼의 역할은 어느 정도 했지만 중재자의 역할은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일본이 한국을 안보상 신뢰하기 어렵고 전략물자가 북한으로 유입된 정황 등을 언급하는 것은 한미 간 신뢰, 나아가 한미 동맹의 근간까지 흔들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는 일본은 북미 협상에서 한국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훼방꾼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본은 지난해 역사적인 1차 북미정상회담이 한국의 중재, 촉진자 역할의 결과로 성사되자 소외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정부는 대북 강경정책을 추진하고 있었고 납치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북미관계 개선은 그다지 환영할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북미 간 협상이 ‘핵’과 ‘ICBM’이 주된 의제인데, 일본 정부는 북미 간 협상 의제에 ‘중·단거리 미사일’과 ‘생화학 무기’ 등 자국의 안보의 이익을 포함 시켜려고 물밑 작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올해 2월 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미 간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있었을 때, 일본은 북한과 정상회담을 시도했습니다. 북일 관계 개선이 당장 시급한 사안이 아닌 북한의 입장으로서는 굳이 정상회담을 할 이유가 없었지요. 일본은 북미 간 교착상태를 일본이 나서 해결하고 동아시아에서 외교역량을 확대하려고 했지만 지난달 30일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회동하는 사실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일 두나라는 역사적으로도 지정학적으로도 인연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본과의 관계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추진하는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의 추진을 위해서는 ‘반일(反日)’, ‘친일(親日)’의 이분법을 떠나 ‘용일·일본을 잘 이용함(用日)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국제사회가 그렇듯이, 한일 관계도 양자 간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 안보 등 글로벌 차원에서 다층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대 정부는 과거사 문제가 양국 관계 발전 및 동아시아 안보 질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배제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말기인 2012년 8월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독도를 방문하고 천황에 대한 사죄를 요구하면서 한일 관계가 경색국면으로 접어 들게 되었습니다. 이 때만 하더라도 한일 간에 역사 갈등은 있어도 경제, 문화, 인적교류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였고, 특히 안보적 측면에서는 한미일 3각 공조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일본 정부도 외교청서나 국방연감에는 한국을 중요한 이웃국가로 규정하고 있었지요.

2015년 9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은 중국의 열병식에 참석하면서 시진핑 주석과 나란히 천안문 망루에 올랐습니다. 일본은 이를 ’중국 경사론‘이라고 여겨 한국에 대해 안보상으로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6년 11월 한일 양국이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체결하면서 양국 간 안보협력에 대한 우려는 일단락 지어졌습니다. 전년 12월 위안부 합의에도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안보 측면에서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 위협과 동아시아 안보 협력에 한미일 삼각이 공조한다는 의식은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인식의 차가 생기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김숙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외전략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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