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이 내려진 2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이날 청와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그간 외교적 해법 마련을 위해 ‘로 키’를 유지했던 청와대는 이날 일본에 대한 날선 반응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이날 하루에만 문 대통령을 포함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 등이 나서 다섯 차례의 공개 발언과 브리핑을 가졌다.
본격적인 2라운드로 접어든 한일 갈등 국면을 그만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지만, 전문가들은 “불쾌감을 표현하는 것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신각수 전 주일대사)고 조언했다. 차분하고 논리적인 대응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 “오늘의 대한민국은 과거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2일 오후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이미 경고한 바와 같이 우리 경제를 의도적으로 타격한다면 일본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경제 보복 조치에 상응하는 조치를 단호하게 취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1일 일본의 수출 보복 조치가 시작된 이후 한 달여 동안 맞대응을 자제해 왔지만, 이제부터는 정면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선포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일본의 결정에 대해 “양국 관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세계 경제에 큰 피해를 끼치는 이기적인 민폐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번 갈등의 단초가 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가해자인 일본이 오히려 상처를 헤집는다면 국제사회의 양식이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일본은 직시하기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또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과거의 대한민국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문장이 오늘 문 대통령 메시지의 요점”이라고 했다. 1945년 광복 이후 한국이 경제력 등에서 일본에 열세를 보였지만, 이제는 일본의 압박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처지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국내 제조업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삼겠다는 뜻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소재·부품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다시는 기술 패권에 휘둘리지 않는 것은 물론 제조업 강국의 위상을 더욱 높이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단합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와 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사, 그리고 국민들이 함께 힘을 모은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며 “정부와 우리 기업의 역량을 믿고 자신감을 가지고 함께 단합해 주실 것을 국민께 호소드린다”고 말했다. ○ “日 대화의 길로 나오라” 거듭 촉구
전례 없는 문 대통령의 이런 강경 메시지는 거듭된 대화 요청을 거부한 것에 대한 누적된 불만에 따른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달 두 차례의 고위급 인사를 일본에 파견하고, 미국 역시 중재에 나섰지만 일본이 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날 공식적으로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불쾌함을 억누르며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던 우리 정부의 노력을 무시하고 일본이 강경 일변도로 나간 것이다. 우리도 더는 지켜볼 수만은 없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여전히 외교적 해법의 길을 열어 놓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지금도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을 원치 않는다”며 “멈출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일본 정부가 일방적이고 부당한 조치를 하루속히 철회하고 대화의 길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이 시행되는 28일까지 외교적 노력은 계속 이어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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