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은 1965년 6월22일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한일협정을 맺고 정식으로 수교했다. 약 14년이라는 회담 기간은 35년간 식민 통치를 한 가해국과 피해국 간 기초적 관계 맺기가 얼마나 험난한 일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협상은 기본 조약과 ‘청구권·경제 협력에 관한 협정’, ‘재일 교포의 법적 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어업에 관한 협정’, ‘문화재·문화 협력에 관한 협정’ 등 4개 조약에 서명하면서 마무리됐다. 공산주의의 팽창에 맞서 한일 간 협력이 필요했던 미국의 중재 노력은 여러 난관을 넘게 했다.
협정 체결을 통해 일본이 제공한 청구권 자금(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은 포항제철 건설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에 투입돼 한국의 비약적 경제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양국 간 갈등의 불씨가 됐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양국 정부는 기본조약 2조에서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합의했다. 또 청구권협정 1조에선 일본이 청구권 자금을 제공하기로 합의했으며, 2조에선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합의했다.
이를 두고 한국은 1910년 8월 한일합병조약과 그 이전에 양국 간 체결된 모든 조약을 무효라고 해석했지만, 일본은 체결 당시엔 합법이었지만 국교수립을 맺은 시점부터 ‘이미 무효’라고 달리 해석했다. 일본 측 해석에 따르면 35년의 식민 지대도 합법적 조약에 의해 체결됐다는 것이다.
거센 협정 체결 반대에 직면했던 한국은 청구권 자금은 식민통치 책임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고, 일본 정부는 이 자금은 청구권 문제의 해결과는 관계가 없는 ‘독립축하금’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적 해석으로 법적 구조를 넘어서려 했던 것이다.
‘65년 체제’는 불안정한 출발이었지만 냉전시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일본에서 식민지 지배 책임을 인정하는 담화가 나왔고,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로 균열을 보이게 됐다.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 판결은 식민 지배가 불법이라는 점을 전제로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했다.
강제 징용 배상문제를, 강제병합을 불법과 합법을 결론내지 못한 청구권 협정에 따라 해결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이 청구권 협정 3조에 의거에 중재 절차를 요청했을 때 우리 정부가 ”일본이 일방적으로, 자의적으로 설정한 일정“이라고 입장을 밝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지난달 18일 ‘일본 경제보복과 한일관계’ 포럼에서 ”65년 체제를 안정화시켜야 한다. 즉 불일치했던 해석을 일치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며 ”봉합 당사자조차도 영구히 지속될 거라 생각 안 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우리 대법원은 청구권협정 체결로 국가의 외교보호권을 포기한 것이지 개인청구권이 소멸될 것은 아니라고 봤다. 일본정부도 개인청구권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많다.
1992년 일본 외무성 야나기다 순지 조약국장은 의회 답변에서 ”일·한 청구권 협정에서 ‘양국간의 청구권 문제가 최종적으로 완전히 해결됐다’는 것의 의미는 양국이 국가로서 갖고 있는 외교보호권을 서로 포기했다는 것이지 개인의 청구권이 국내법적인 의미로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발언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지난달 4일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관련 핵심소재 3종에 대한 대(對)한국 수출규제 개시에 앞서 지난달 1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우대국)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고시했고, 의견 공모 절차를 거쳐 전날(2일) 의결했다.
이 같은 조치들에 대해 일본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일본제철·미쓰비시(三菱)중공업 등 자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보복’이란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전일 외교부로 소환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는 조세영 외교부 1차관에게 ”양국간 어려운 상황은 작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작년 여러 문제 발생한 것이 원인이 될 수 있다“며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에 따른 것임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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