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관계의 중요성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 그리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3국 공통의 도전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긴밀하게 공조할 것을 재확인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일 태국 방콕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마친 뒤 3일 이런 보도자료를 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 회담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대해 “모든 것을 테이블에 올리고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까지 밝히며 미국의 역할을 주문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한미일 관계의 중요성(importance of the US-ROK-Japan relationship)’이라고 명시는 했지만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로 인한 한일 갈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외교가에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폭주로 미국의 동북아 안보 전략의 핵인 한미일 3각 공조가 흔들리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단 워싱턴도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로 인한 한일 갈등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2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한일 갈등은) 감정적인 사안이다. 한반도에서만 그럴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라며 “(갈등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지 않도록 한일 양국 정부가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 간 분쟁에 ‘감정싸움’의 요소가 강해지는 만큼 일회성 갈등이 아닐 수 있다며 내놓은 반응이다.
이는 이번 사태로 동북아에서 미국 안보 구도의 기본 축이 흔들려서는 곤란하다는 인식과 무관치 않다. 미국은 한미 동맹을 ‘린치핀(linchpin·핵심축)’으로, 미일 동맹을 ‘코너스톤(cornerstone·주춧돌)’으로 삼아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에 맞서는 동북아 전략을 구사해왔는데,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를 계기로 그 기본 전열이 흐트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 국무부는 1일 밤까지 각종 채널을 가동하며 한일 갈등 해소에 대한 해법을 타진해본 것으로 전해졌다. 강 장관은 1일 밤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갈라 만찬에서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와 20분가량 관련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강 장관은 4일 당정청고위협의회에 참석해 “ARF에서 정보보호협정 폐기를 시사한 데 대해 미국이 우려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미국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것을 막을 정도의 충분한 관여는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3각 공조의 중요성과는 별개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신밀월관계’라는 표현이 나오는 미일 관계를 고려했을 때 충분히 한국 입장을 들어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에번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태수석차관보는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 갈등에) 개입할 열의가 별로 없었다. 폼페이오 장관이 나서 봤으나,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사격이 없는 상황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혼자 한일 갈등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이어지며 한미일 외교라인에선 어떤 식으로든 한미일 3각 공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한미일 3국 북핵 수석대표들은 2일 방콕에서 3자 협의를 진행하며 북핵 문제에서만큼은 긴밀한 공조를 이어간다는 기조를 확인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까지는 아베 총리의 폭주가 어디까지 전개될지 지켜보는 상황”이라며 “시간이 갈수록 한미일 3국 공조라는 미국의 동북아 핵심 안보 전략이 흔들릴 수 있는 만큼 트럼프의 침묵이 마냥 길어질 수만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일본의 경제 도발이 경제를 넘어 안보 지형까지 흔드는 위험천만한 선택임을 워싱턴이 인지할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각급 채널에서 한국의 외교적 자산을 동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린치핀(linchpin·핵심 축)
수레바퀴 가운데 축이 빠지면 수레 전체가 전복되듯이 꼭 필요한 핵심 존재라는 의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한미동맹을 가리키며 처음으로 이 표현을 썼다.
코너스톤(cornerstone·주춧돌)
건물을 떠받치는 주춧돌이라는 의미. 오바마 대통령이 2012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보낸 재선 축하 성명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 이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도 미국은 일본에 대해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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