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의 국제면에서는 UN과 같은 국제기구를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들은 인간안보, 인도주의 등 인류 보편의 가치에 입각해 공동으로 대응하기보다 자국의 이익 극대화에 기초해 개별적으로 행동하는 모양새다.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적 해결 대신 각자가 투사할 수 있는 국력에 기초한 자력 구제에 의존하는 현실주의적 경향이 두드러진다. 미드(Walter Russell Mead) 교수가 2014년 포런어페어스(Foreign Affairs) 기고문에서 표현한 것처럼 ‘지정학의 귀환(the return of geopolitics)’이다.
미국 정계는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용어 대신 미중 디커플링(decoupling)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양국이 정치·안보·통상 등 분야에서 탈 동조화해 각자의 표준을 분절적으로 수립한다는 것이다. 패권국인 미국은 자신에게 탐탁지 않은 현재의 질서를 재편하고자 한다. 즉, 미중의 무역 분쟁과 일련의 디커플링 혹은 탈동조화 동향은 그간의 결탁관계에 대수술을 가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패권의 주기적 재조정 과정의 재현인 셈이다.
국제정치의 구조적 질서가 조정될 때 필연적으로 다양한 층위에서 행위자가 직면하는 불확실성이 크게 증가한다. 현실주의자인 반 에베라 (Stephen Van Evera)는 패권국가와 도전 국가 간 국력 변동(power shift)이 발생할 때 후자에게 기회의 창(window of opportunity)이 열리고 전쟁 가능성이 증가한다고 보았다.
한반도에 있어서 문제는 최근 가시화되고 있는 한일 디커플링 경향이다. 역사·안보·통상 등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한일 갈등이 과연 미중에 이어 동북아시아 지역 수준에서 한일의 관계해체로 비화되고 역내 불확실성을 제고할 것인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일본의 각의 직후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정부 합동브리핑에서 우리 산업의 대일(對日)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추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경우 북미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협하는 일본발 리스크에 대한 면밀하고 구체적인 평가가 요구된다.
현재의 한일 갈등은 지난해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직접적인 촉발 요인으로 작용하였던 것이 사실이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1965년 한일협정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축적되어 온 성격이 강하다. 1965년 체제는 경제발전의 후발주자인 일본과 후후발주자인 대한민국의 성장 모형, 이른바 동아시아 발전국가 모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거쉔크론(Alexander Gerschenkron)이 지적한바 경제발전의 후발 국가들에게는 대규모 자본 축적을 주도하기 위한 자율적인 국가 기구의 필요성이 크다. 이에 따라 1962년 화폐개혁에 실패한 박정희 정부는 1965년 한일 협약 등을 통해 내부가 아닌 외부로의 자본 유치를 선택하였다. 이후 지역 경제 수준에서 자본풍부국인 일본으로부터 사양산업을 이어받으며 동북아시아의 무역분업 구도를 형성하였으며, 1970년 4월 발표된 야스기 시안을 통해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였다. 한국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 생산 공정에 대해 일본이 중간재 공급 곤란을 유발하여 타격을 가하였듯 동북아시아의 무역 질서는 여전히 지역 수준의 무역 분업과 가치사슬에 기초하고 있다.
최근의 한일 갈등이 종래의 1965년 체제에 중대한 수정을 요구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한일이 디커플링에 준하는 관계의 해체로 나아간다면 과거 경제성장의 동반자였던 안행 모형(flying geese model)의 선두 기러기와 후발 기러기는 결별 수순을 밟게 된다. 일본과 함께 민족주의로 중무장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권은 지금 결단의 순간에 맞닥뜨려 있다. 과연 우리에게 일본이 필요 없는지 냉철하게 자문해보아야 하는 최후의 시점이다.
경제 및 통상 부문에서 대한민국은 일본 수입선에 대한 민감성(sensitivity)과 취약성(vulnerability)이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세계 11위 규모인 우리의 경제력은 그에 대한 어느 정도의 탄성을 갖추고 있으므로 관리가 불가한 수준은 아니라고 볼 것이다.
문제는 정치 및 안보 부문에 대한 충격이다. 오늘날과 같은 지정학 시대에 정치 분야에 대한 경제 부문의 확산 효과(spill-over effect)는 불 보듯 뻔하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의 근거로 안보상의 이유를 들었고, 한국은 통상 분쟁에 대해 안보조약 파기를 논하며 교차보복을 검토하고 있다. 통상 부문의 구심력 해체는 필연적으로 안보상 구심력 해체를 아울러 의미한다.
무엇보다 북미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우리와 반목 관계에 있는 일본은 지나친 부담이다. 특히 한미동맹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외교 외연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 한미동맹은 그 자체 독립적인 양자동맹이 아니며 그 실체는 미국이 동아시아에 구축한 차륜동맹(hub and spokes system)의 맥락 속에서 파악된다. 한미일의 삼각구도 속에서 중심(hub)에 대한 바퀴살들(spokes)의 철지난 충성 경쟁이 연출되고 미국이 양자택일 상황에 놓여지는 시나리오는 우려스럽다. 대한민국이 선택받을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공식적으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들어가 있지 않고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도 일본 다음으로 언급되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이 한국을 때리기 전에 미국과 교감하지 않았을 리가 만무하다. 그 경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파기가 일본 때리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과 미국의 구심력에 어떠한 형태로든 파급력을 미친다면 한국은 자상을 입게 된다.
필자는 미중 디커플링이 제고한 불확실성은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불확실성의 조건 속에서 운신의 폭을 넓혀온 한국의 외교적 노력이 일군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것이다. 반면 한일 디커플링이 현실화되는 경우 그것이 수반하는 불확실성은 이를 저해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북한의 비핵화가 실질적으로 진전되어 대북 투자의 길이 열린다면 가장 먼저 투자에 나설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점을 주지하여야 한다. 일본이 소극적 반대자가 아니라 적극적 훼방꾼이길 자처한다면 한일 디커플링은 중장기적으로는 대한민국 외교의 최고 국정과제인 한반도 평화 구축에 대한 자충수일 수 있다.
평소 자주 치고받던 친구와 또 크게 싸웠을 때 바로 다음날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그닥 바람직하지 않다. 잠깐은 그 친구를 욕하며 화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영영 다시 보지 말자며 절교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일본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은 우리 국민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엄숙히 전달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고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일본 제품에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이 다시 보지 않을 생각이 아니라면, 만약 이 지점에 대한 국민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마주할 그 내일을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자세이며 동시에 이 갈등에서 승리하는 길이기도 하다. 먼 길일수록 돌아가라고 하였다. 지금 당장 건설적인 양자 관계의 수립이 곤란하다면 아시아나 인도태평양 수준의 다자 협의체에서 일본과의 접촉면을 넓혀 두는 것이 하나의 레버리지가 될 수 있다. 또한 실제 만나보았을 때 나쁜 사람은 없다는 일상의 격언을 기억한다면 정치인이나 이익집단 외 보통의 일본 사람들과 시민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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